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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겨울연가 - 낙화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24

  • 웹출고시간2017.01.19 16:52:26
  • 최종수정2017.01.19 16:52:26
이형기는 우리 시사(詩史)에서 허무와 소멸의 미학을 수준 높게 구현한 시인이다. 그의 시에는 실존적 존재 탐구와 삶에 대한 장엄한 인식이 깔려 있다. 그는 인간을 이 세계에 내던져진 비극적 존재로 받아들여 절망의 문제를 실존주의 시각에서 탐구한다. 인간 존재와 삶의 허무를 종말론적 세계로 그리지 않고 달관과 긍정의 세계로 그려낸다. 비극적 존재인 인간 앞에는 늘 벽들이 서 있고, 시인은 이 벽들의 한계상황에 맞서 극복하려 한다. 그의 시에 분수, 파도, 민들레, 새 등 허무와 대결하는 작은 존재들에 대한 역설적 인식이 자주 나타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새가 벽을 넘어서는 삶의 장엄함과 아름다움, 영원에 대한 시인의 갈망을 보여주는 소재라면, 꽃은 청춘의 상징으로 쓰이면서 삶의 쇠락과 허무를 사랑으로 극복하게 하는 자기희생적 존재로 등장한다.

어떤 소재가 등장하든 그의 시 밑바탕에는 허무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초기의 허무가 자연의 순환원리를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한다면, 후기의 허무는 실존적 자기인식을 낳는 반성적 촉매제 역할을 한다. 특히 초기에 시인은 자연의 대상물에 감정을 담아 노래하는 전통적 서정의 세계를 펼치는데, 이때의 자연은 실재하는 외부의 풍경이 아니라 시인의 주관에 의해 만들어진 관념적 풍경에 가깝다. 따라서 시적 화자는 실재하는 자연에서 괴리된 채 자연에 적극적으로 동화되지는 않는다. 이 점이 청록파 중심의 전통 서정시와 이형기 초기시의 차이점이다. 관념적 풍경들을 통해 자아의 고독과 폐쇄성, 엘리트 의식 또한 드러내며, 쇠락과 소멸을 인간의 운명으로 수긍하는 태도를 보인다.

낙화 - 이형기(李炯基 1933~2005)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런 특징은 초기의 대표작 '낙화'에 잘 드러나 있다. 시인은 가야할 때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을 지극한 아름다움으로 묘사한다. 꽃이 피고 지는 자연현상처럼 사랑을 이별과 축복의 관점에서 응시한다. 꽃의 짐이 열매를 위한 아름다움 죽음이기에 이별의 슬픔은 환희로 반전된다. 이런 역설과 승화의 시각에서 시인은 사랑에 수반되는 고통과 비애를 인간의 영혼을 성숙시키는 밑거름으로 보는 것이다. 여름의 짙은 녹음과 곧 다가올 가을의 열매를 위해 아름다운 자신의 존재를 기꺼이 쇠락의 땅으로 던져버리는 봄꽃의 운명을 자신과 동일화한다. 또한 시인은 은유의 절제, 감정의 통제, 대상에게로의 투사 등을 통해 삶의 비애와 절망을 수행자처럼 몸 안으로 체화하려 한다. 삶에 대한 이런 포용적 성찰과 반성이 시의 울림을 낳는다.

초기를 지나면서 이형기의 시는 점차 변화한다. 삶을 긍정하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초기의 전통서정시 세계에서 벗어난다. 날카로운 감성과 새로운 언어 미학을 강조한 중기의 주지주의 세계를 거쳐, 생태학적 고발과 도시공간의 폐해를 직시하는 후기의 문명비판 세계로 계속 변화해간다.

/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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