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6.01.14 14:44:48
  • 최종수정2016.01.14 14:50:57
나는 요즈음 80세의 할아버지와 사랑에 빠졌다. 순수하고 온화한 마음을 소유한 할아버지와 커플이 된지 보름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데도 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아주머니"라고 깍듯이 부른다.
할아버지는 계속 창밖을 내다보시고 서성거리시며 "문을 열어주세요. 아이들이 나를 찾느라 난리가 났어요. 체육관으로 가야 합니다." 라고 순수한 눈빛으로 애원하듯 말씀하신다. 햇살이 없는 음산한 겨울 날씨는 하루 종일 할아버지가 집으로 돌아 가야하는 저녁시간이다. 아무리 달래도 3초가 지나면 여전히 같은 말씀이시고 늘 새로운 얼굴을 마주하는 아주머니로 호칭이 된다. 어린아이라면 업어 달래기라도 하지. 어린아이라면 과자라도 입에 물리지. 엄마 찾는 아이와 무엇이 다를까. 창밖을 내다보며 리모콘을 귀에 대고 딸 이름을 부르며 통화하는 모습은 한겨울 칼바람이 가슴속을 후벼 파는 듯이 아리다. 그런 할아버지를 안고 딸이 되어 다른 이야기 속으로 마음을 이끌고 간다.

할아버지는 지극한 효자 삼남매를 두셨다. 요양원에 오시기 전에는 아침에 집에서 나와 체육관근처를 배회하셨다 한다. 늘 다니시는 길이지만, 길을 잃으실 때도 체육관 근처를 가면 따님은 아버지를 찾을 수 있었단다.

9년 전 경노당에서 행동이 이상하다는 말씀을 듣고 치매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딸과 함께 생활하면서 매주 마다 아들들은 서울에서 내려와 아버지를 보살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상은 점점 심해지고 각자의 생활을 해야 하는 자식들은 마음과는 달리 아버지를 모실 수 없는 현실인 것을 어찌하랴. 그 젊은 삼남매의 호소는 내가 처음 우리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실 때 마음을 상기시켰다. 삼남매는 상담을 하며 많이도 울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4번이나 요양원을 방문하고 나서야 할아버지를 만나게 해 주었다. 모시고 있던 딸은 차마 오지 못하고 아들 두 분이 아침에 방문해서 저녁 드시는 것까지 밖에서 지켜보고 잘 부탁한다는 말을 수십 번하고 돌아갔다.

할아버지는 3초만 기억하는 순순한 아기다. 꼿꼿한 허리와 반듯한 걸음걸이 말씀도 늘 경어를 쓰시는 모습은 할아버지의 인생을 보는 것 같다. 화장실에서 나오시면서 당신의 슬리퍼를 반듯하게 벗어놓고 나오시고 실수가 두려워 바로 화장실을 찾으신다. 부딪히는 말씀은 하지 않으신다. 이런 신사분이 어쩌다가 정신 줄을 놓으셨을까.

반듯한 삶을 꾸리려고 혼자 다 끌어안고 사신 것이 아닐까. 세상과 타협하기 어려운 일들을 꽁꽁 가슴에 묶어두고 좋은 사람으로 사시느라 애쓰신 것일까. 할머니를 일찍 떠나보내고 고독이 머릿속을 갈아먹어 버렸나. 집으로 가게 문 좀 열어 달라는 할아버지의 애절한 눈빛을 마주하면 마음이 무너져 어떤 말로 달래야 할지 늘 쩔쩔맨다.

치매어르신은 모두 다른 모습으로 기억을 잃어간다. 그리고 다양한 행동으로 자신을 들어낸다. 색깔에 비유하면 모두가 우울한 색이다. 그 초점 없는 희미한 고독한 눈빛은 어쩌면 내 곁에서 의지하며 쉬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할아버지도 가끔 그렇게 조용히 앉아 계신다. 3초의 기억이 아니고 구름을 타고 먼 여행을 하는 사람처럼 침묵으로 계신다. 무아의 세계에서 기억을 되찾아 멋진 신사로 나타나면 좋겠다. 그렇게 되도록 나는 늘 기원하며 다가간다.

찬란하게 살아온 시절이 아니고,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며 젊음을 불살랐던 내 부모님들이다. 이제 어깨 펴고 즐겁게 살만한 세상이 되었지 않은가. 그러나 질곡의 삶은 가슴에 핏덩이를 만들었고, 그 응어리들은 흘러 다니다 기억으로 가는 길목을 막았으니 어찌하랴.

노래를 기억하시는 분과는 노래를. 공부를 좋아하시는 분과는 천자문을 쓰고. 화투를 좋아하시는 분과는 화투놀이도 하고. 울면 같이 울고 같이 웃으며 막힌 길목을 뚫고 있다. 이 좋은 세월을 조금이라도 더 누릴 수 있도록 행복한 삶을 보상해 드리고 싶다.

할아버지는 요즈음 천자문 공부를 하고 계신다. 하늘 天 땅 地 라고 읽으시지만 아직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공부하시는 동안은 볼펜을 들고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들의 아버지의 모습으로 앉아 계신다. 그러다 집으로 간다고 시작하면 한없이 보채서 안타깝게 하지만 나는 그런 할아버지를 사랑한다.

양승복 수필가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수강

-제2회 효동문학상 대상 수상

-푸른솔문학 신인상 수상

-푸른솔문학 작가회 회원

-초정노인복지재단 요양병원 간호사 팀장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