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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봄의향연 - 이순(耳順)의 고개를 넘으며

  • 웹출고시간2015.03.19 18:09:23
  • 최종수정2015.03.24 09:09:20
ⓒ 충북일보 DB
남녘의 꽃소식이 빠르게 전해지고 있다. 이곳의 봄은 어디쯤 오고 있는지 햇살이 고운 날 집을 나섰다. 재래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봄나물은 제철에 나는 게 향기가 좋다. 여기저기 둘러보니 수북이 담아 놓은 쑥, 냉이, 달래 등, 들나물이 한창이다. 여러 가지 나물들 중에도 보들보들한 잎에서 쑥향이 몽클하게 전해져 왔다. 무얼 살까. 망설이던 중 어느 시골 할머니 노점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바닥에 비닐을 깔아 놓고 그 위에 옹기종기 펼쳐진 겨우 몇 가지의 푸성귀들….

"내가 깨끗한 곳에서 뜯은 거여"라는 음성에는 사가라는 할머니의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소쿠리에 담아놓은 쑥 한 무더기와 벌금자리도 샀다. 할머니는 거친 손으로 한 움큼 덤으로 주셨다. 나는 봄나물을 쉽게 샀지만, 온 들을 헤매며 뜯은 것을 선뜻 집어 주시니 내가 더 고마워서 마음이 훈훈해졌다. 주름진 얼굴과 거친 손등의 고단한 할머니의 삶을 봄 햇살이 다 보듬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돌아서며 내 어머니가 지금 생존에 계셨더라면 저 할머니 연세쯤일 텐데….

며칠 후면 어머니 제삿날이다. 어머니를 잃고 그렇게도 슬퍼했던 봄이 돌아오면 알 수 없는 봄 앓이를 한다. 세월이 몇 십 년이 흘렀어도 아련히 떠오르는 어머니 모습을 생각하면 울컥울컥 아려오는 슬픈 봄이다. 고생만 하시다가 좋은 세상도 못 보시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부르면 목이 멘다. 맏딸을 시집보내놓고 한 번도 딸이 사는 모습을 보여 드리지 못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도 가고 싶고 맛있는 것도 사 드리고 싶은데 안 계신 어머니가 오늘따라 한없이 사무쳐왔다. 이제 효심을 말한들 무슨 소용 있는가.

봄나물을 사 들고 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대문 앞에 다 닿았을 때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물 뜯은 작은 소쿠리를 들고 사립문에 들어서던 그때의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봄이면 아이들과 언덕의 덤불을 헤치며 냉이와 달래도 캤었다. 남보다 많이 뜯으려는 욕심 부리던 일이 어렴풋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여린 쑥은 생콩가루에 버무려 놓았다. 맛 내기용으로 우려낸 육수에 집 된장을 풀고 끓였다. 국물이 팔팔 끓어오르면 콩가루 버무린 쑥을 넣고 한소 큼 더 끓였다. 우리의 삶도 조화가 잘 이루어져야 인생이 아름답듯이 된장과 어우러진 쑥 향이 향기롭다. 무를 채 썰어 살짝 절인다. 그래야 무 씹히는 식감이 아삭아삭하다. 채 썬 무나물에 갖은 양념을 넣고 조물조물 무쳤다. 특별히 벌금자리가 있으니 남편에게 봄을 선사하기 안성맞춤이 될 것 같았다. 무생채 나물에 향기 좋은 벌금자리가 주인공이 된 셈이다. 고소한 참기름과 식초 몇 방울 똑똑 떨어트려 무쳐 냈다. 정갈하게 무친 나물을 하얀 접시에 담으니 고향의 봄 향기가 느껴 오는 듯했다.

따뜻한 이 봄은 왠지 설렘보다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만 행복하고 즐거우면 그만이라는 이기심으로 살아온 지난날이었다. 이순의 고개를 넘으니 이제야 후회하게 되다니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어린 시절 아이들과 봄나물 뜯을 때 동심의 마음속에도 욕심과 시샘이 움트지 않았던가. 살면서 사소한 이득에만 익숙해지고 남을 위한 배려나 희생정신은 나와 상관없는 일로 생각했었다. 너무 메마른 내 삶을 반성해 본다.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잘못 설정되었던 고정관념은 이제 버려야 할 때다. 시장에서 할머니가 건네주던 봄나물 한 줌의 정겨움이 허전한 가슴을 채웠듯이 나눔이 오가는 따뜻한 이웃이 되어 새봄을 맞이해야겠다.

◇고승희 작가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교실 수료

푸른솔문학 신인상 (수필가 등단)

푸른솔문학 작가회 회원

정은문학상 수상

공저: <심연에 자리한 이름 > <반딧불> <무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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