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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겨울연가 -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 웹출고시간2019.01.10 17:27:44
  • 최종수정2019.01.10 17:27:44
[충북일보] 도종환은 체험을 바탕으로 사색과 성찰을 펼치는 시인이다. 비애감과 함께 희망에 대한 의지가 묻어나는 그의 시는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흔적들이다. 그의 시는 객관적 현실에 부드러운 리듬이 실리면서 슬픔의 물기를 머금는다. 그는 사회의 아픔이든 민족의 아픔이든 개인의 아픔이든 그 아픔에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다. 체험 자체와 체험의 시적 형상화의 차이다. 체험이 아무리 많아도, 체험이 아무리 절절해도 그것이 반드시 좋은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시는 체험 자체가 특수해서가 아니라 평범한 체험 속에서도 특수함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즉 시인에게는 체험도 중요하지만 체험에 대한 사유, 감각, 표현도 매우 중요하다. 체험 자체만으로는 결코 좋은 시가 될 수 없다. 시에서 진리나 가치의 문제 또한 비슷한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삶의 아름다움과 진리를 일러주는 동서고금의 경전들,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철학서나 수상록은 너무도 많다. 그럼 시는 이 위대한 경전들이 주지 못하는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미적 체험과 감동이다. 시는 철학이나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적 감동과 깊은 울림을 주면서 철학과 과학의 근원적 문제들을 건드린다.

도종환의 시는 초기의 고통과 슬픔의 세계에서 부드러운 직선과 해인의 세계를 거쳐 아름답고 처연한 노을이 깔리는 저녁 다섯 시의 세계로 이행해가고 있다. 그는 첫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1985)에서 찢긴 역사 속 이웃들의 아픈 삶을 주목하고, 두 번째 시집 '접시꽃 당신'(1986)에서는 절망과 허무 속에서 세상을 비애의 눈길로 풀어내 수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다. 이후에도 그는 여러 시집을 출간하는데, 특히 아홉 번째 시집 '해인으로 가는 길'(2006)을 통해 상처뿐인 삶의 시간과 풍경, 심신에 찾아든 병(病)을 고즈넉한 시선으로 응시한다. 병의 치유과정을 통해 육욕과 집착을 비우고 고통을 생의 축복으로 치환한다. 이 시집의 화두는 화엄(華嚴)과 해인(海印)이다. "심신에 병이 들어 쫓기듯 해인을 찾아간다/…/그러나 나는 아직 해인에도 이르지 못하였다/지친 육신을 바랑 옆에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 도종환(都鍾煥 1955∼ )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

지금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고,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도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머지않아 겨울이 올 것이다

그때는 지구 북쪽 끝의 얼음이 녹아 가까운 바닷가 마을까지 얼음조각을 흘려보내는 날이 오리라 한다

그때도 숲은 내 저문 육신과 그림자를 내치지 않을 것을 믿는다

지난봄과 여름 내가 굴참나무와 다람쥐와 아이들과 제비꽃을 얼마나 좋아하였는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보낸 시간이 얼마나 험했는지 꽃과 나무들이 알고 있으므로

대지가 고요한 손을 들어 증거해줄 것이다

아직도 내게는 몇 시간이 남아 있다

지금은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내려놓고/바다의 그림자가 비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누워 있다/지금은 바닥이 다 드러난 물줄기처럼 삭막해져 있지만/언젠가 해인의 고요한 암자 곁을 흘러/화엄의 바다에 드는 날이 있으리라/그날을 생각하며 천천히 천천히 해인으로 간다"(시 '해인으로 가는 길' 부분)

화엄과 해인의 세계로 가면서 그는 열 번째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2011)를 상재한다. 생의 중심부였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를 지나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가라앉은 오후 세시와 다섯시 사이로 접어든다. 치열했던 청춘을 회한의 눈빛으로 되돌아보면서도 자신의 생에 남은 어두워지기 직전의 몇 시간을 두근거림 속에서 기다린다. 꽃과 나무와 숲, 대지와 우주가 자신의 저문 몸과 그림자를 내치지 않을 거라는 위안 속에서 저물녘의 노을과 노을 번지는 하늘이 선사할 황홀을 기다린다. 시인의 이 모습이 간절하고 아프고 처연하다. 더욱이 머지않아 눈보라와 함께 찾아들 혹한의 겨울, 북극의 빙하가 녹아 가까운 바닷가 마을까지 흘러들 날을 예감하고 있기에 시인의 마음은 더욱 간절하다.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는 뜨거웠던 정오의 햇볕과 열기가 가라앉고 서서히 노을이 섞이는 시간대, 뜨겁고 격렬했던 청춘을 지나 노년으로 접어드는 생의 접경지대, 시련과 고난 이후에 찾아드는 마지막 황혼의 축복지대다. 시인에게 상처를 준 수많은 세상과 사람들을 용서하고 스스로를 더욱 깊이 응시하는 시간대이므로 아름다운 성찰의 시간, 희망의 시간이다. 정직한 몸의 시간이자 인간의 시간이다.

/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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