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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11.27 18:16:01
  • 최종수정2015.12.03 16:49:42
스무 살 가을, 바다가 태양을 삼키듯이 낙조처럼 찬란하게…. 그는 나를 찾아와 별이 되었다. 같이 근무하던 직장동료 중 세 살 위인 사람에게, 어느 날 낯모르는 군인으로부터 꽃봉투가 날아왔다. 그녀는 글 쓰는 취미가 없으니, 날 보고 대신 답장하라며 편지를 건네주었다. 내게 온 편지는 아니지만 외울 정도로 읽고 읽었다. 그는 서울의 k대학을 졸업한 후 늦깎이로 입대한, 육군병장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미지의 사람과 편지로 마음을 나누고 싶다면서 간절히 답장을 기다리겠다는 내용이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그날 밤늦도록 고민하다가 그에게 편지를 썼다. 그쪽에서 보낸 편지 수신자인 P선생과 함께 근무하고 있고, 펜팔 의사가 없는 그녀가 편지를 주었고, 용기를 내어 편지를 쓰게 됐노라고 썼다. 답장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여자가 먼저 편지를 보내서 가벼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혹시 나쁜 사람은 아닐까·' 하는 염려가 시냇물 수면의 여울처럼 마음을 흔들었다면, 미지의 사람과 펜팔 교제를 하고 싶다는 호기심은 밀려오는 바닷물처럼 감정을 휩쓸어 덮어버렸다.

"선생님 편지 왔어요!" 유치원 꼬마들이 집배원에게 편지를 받아 가지고 왔을 땐 심장이 터지는 것 같았다. 고연히 아이들에게 부끄러워 구석으로 가서 뜯었다. 내용은, 본인의·편지를 반송시키지 않고 답장해준 것이 고맙다고 했다. 유려한 문체와 약간 흘림 정자로 쓴 또박또박한 필체는 그의 인품이 고결하게 느껴졌다. 그날, 초가을 햇살만큼이나 눈부신 꿈 한 자락이 꽃봉투를 따라와 나비처럼 앉았다. 그 뒤 우린 일주일에 두세 번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탐색했다. 일 년 가까이 둘만의 이야기를 나누며 정이 들어갔다. 연애 경험이 없던 나는 상대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설렜다.

별을 동경하여 무지개를 잡으려고 뛰어다니던 어릴 적 꿈들을 그를 통하여 채워갔다. 편지 교환을 하다 보니 만난 적은 없지만 늘 보는 것처럼 가깝게 느껴지며, 어디선가 우연히 마주쳐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친밀감이 들었다. 그는·여러 양서들을 소개하면서 꼭 읽어보라 권했다. 그중 '황야의 늑대'· '킬리만자로의 표범' '적극적 사고방식' 등의 책들은 구입해서 읽은 후, 보내 달라 해서 정성스레 포장해서 부쳐주었다. 편지가 거듭될수록 나의 지적 능력은 그와 차이가 나는 걸 느꼈지만, 나무 아래에서 찍어 보낸 훤칠하고 멋진 사진을 본 뒤, 그를 잃고 싶지 않은 욕심이 생겼다.

그런데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는 나이가 스물일곱 살이었는데, 내 나이가 스무 살이라 하면 어리다고 답장이 안 올까봐 스물네 살이라고 거짓말을 한 거다. 또한 작은 내 키를 십 센티나 크게 과장했고, 수많은 시인들의 시어들을 슬쩍슬쩍 인용하여 내 것인·냥 글을 만든 뒤 우체통에 집어넣는 일이 허다했으니, 나는 거짓투성이였다.

천지를 붉게 태우던 단풍이 낙엽으로 변하여 땅에 구르며 온몸으로 마지막 절규를 하던 그해 가을, 그는 전역하여 사회인이 된다면서 나를 만나러 오겠노라고 했다. 순간, 가슴에서 별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느꼈다. 그와 이별할 때가 다가옴을 직감한 거다. 군대에 있을 동안만 그에게 활력을 주면서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현실은 두렵고 떨리는 엄청난 문제가 된 거다. 밤새 고민하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이별을 고하는 편지를 보내자 그는 반발했다. 이해할 수 없다, 받아드릴 수 없다면서 찾아오겠다고 했다. 와도 절대 만날 수 없을 거라고 간절히 전했다. 어느 날 고향 역에 있는 다방 '돌체'에서 종일이라도 기다리겠노라는 전갈이 직장으로 왔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나는 끝내 그 다방에 나가지 못했다.
낯선 곳에 왔다 쓸쓸히 가야했던·그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으나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대, 어디선가 이 글을 혹시라도 읽는다면 용서를 구합니다. 그대여,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습니까. 분노와 실망이 얼마나 크셨습니까. 이제는 부질없는 말이지만, 그날 그 다방에 나가지 못한 제 심장도 까맣게 재가 되어 녹아내렸답니다.

나는 몸이 축 갈 정도로 앓았다. 그를 보내고 나서야 내 마음이 진심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지금도 그를 첫사랑이라고 부른다. 첫사랑을 보내버린 슬픔은 혹독했다. 주옥같은 편지들을 오랫동안 버리지 못하고 간직했었다. 철없고 어리석어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채 보내버린 첫사랑에 대한 미련과 아픔이 오래 지속됐었다.

그해 초가을, 코스모스 꽃길 따라 와서 내 가슴에 머물렀던 첫사랑은 그렇게 영원히 가버렸지만 영롱한 글씨체와 의미를 담았던 글귀 몇 구절과, 집배원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꿈같이 행복했던 아픈 추억은 지금도 금처럼 반짝거린다.

임미옥 수필가

-푸른솔문학 신인문학상 수상
-동양일보 신인작가상 수상
-푸른솔문인협회 우수작가상 수상
-현재 충북일보 칼럼 <산소편지>연재
-그림여행 '충북의 명소' 집필 충북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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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