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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가을동화 - 손무덤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 웹출고시간2018.11.15 16:20:25
  • 최종수정2018.11.15 16:20:25
[충북일보] 박노해의 시에는 노동자의 참혹한 현실과 피울음 섞인 고통이 매우 사실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초기시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한 현장 일꾼들의 아픔과 투쟁의 목소리가 짙게 배어 있다. 그의 시에서 느껴지는 서정적 비애와 분노의 목소리는 자본을 매개로 벌어지는 수탈자와 노동자 사이의 대립구조에서 발생한다. 이 대립은 자본주의의 발생 및 성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 결과로 이 구조적 모순이 갈등을 낳고 노동자의 저항의식을 촉발하는 배경이 된다. 이러한 계급구조에 대한 비판적 자각과 분노, 그 모순에 대한 변혁과 투쟁 의지는 박노해 시의 핵심 근간이라 할 수 있다.

노동문학은 노동자의 생활, 노동의 참된 가치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모든 종류의 문학을 일컫는다. 1970년대 한국경제가 고도성장 단계로 접어들면서 소수 권력층과 자본가들이 부(富)를 독점하고 노동자들은 이들의 노예적 수단으로 전락해버린다. 이런 시기에 인간답게 살고 싶은 민중들의 인권과 생존권을 주창하는 문학이 자연발생적으로 등장하는데 이것이 민중문학이고, 1970년대의 민중문학이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범위를 좁혀 노동자들의 삶과 아픔을 사실적으로 실체화한 것이 노동문학이다. 노동문학은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온갖 횡포와 착취, 노동자들의 고통과 피폐한 생활, 자본지배가 빚어내는 각종 병폐와 부조리 등을 날카롭게 묘파한다.

『노동의 새벽』(1984)은 당시 군사정권의 금서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천만 노동자를 각성시키고 젊은 대학생들은 노동현장으로 뛰어들게 촉발한 당대의 문제적 시집이다. 이때부터 시인은 군사독재정권의 표적이 되어 7년여를 수배자로 쫓기며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리게 된다. 시집에 수록된 시 「손무덤」은 노동자의 비극적 고통을 매우 생생하고 뼈아프게 재현해낸 작품이다. 공장에서 프레스 기계에 손목이 잘린 노동자 정형의 끔찍한 상황과 비극에 처한 가족들, 병원 응급실을 찾는 과정과 산재처리 과정에서 느끼는 화자의 극한적 슬픔과 분노가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또한 노동자 세계와 대비되는 자본가 세계의 개기름 번지르르한 실상, 미국 자본에 의해 식민화된 한국사회의 자본화 현실이 풍자와 야유의 시선으로 처리되어 있다. 가슴 저린 인간적 통증과 함께 분노를 치밀게 하는 시다.

1991년 시인은 정보기관에 체포되어 '반국가단체 수괴' 죄목으로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형에 처해진다. 수감 중이던 1993년 옥중에서 펴낸 2시집 『참된 시작』을 펴내는데 그는 자신이 꿈꾸던 민중해방, 노동

손무덤 - 박노해(朴勞解 1957∼ )

올 어린이날만은/ 안사람과 아들놈 손목 잡고/ 어린이 대공원에라도 가야겠다며/ 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 손목이 날아갔다.

작업복을 입었다고/ 사장님 그라나다 승용차도/ 공장장님 로얄살롱도/ 부장님 스텔라도 태워 주지 않아/ 한참 피를 흘린 후에/ 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을 갔다.

기계 사이에 끼어 아직 팔딱거리는 손을/ 기름먹은 장갑 속에서 꺼내어/ 36년 한 많은 노동자의 손을 보며 말을 잊는다./ 비닐봉지에 싼 손을 품에 넣고/ 봉천동 산동네 정형 집을 찾아/ 서글한 눈매의 그의 아내와 초롱한 아들놈을 보며/ 차마 손만은 꺼내 주질 못하였다.

훤한 대낮에 산동네 구멍가게 주저앉아 쇠주병을 비우고/ 정형이 부탁한 산재 관계 책을 찾아/ 종로의 크다는 책방을 둘러봐도/ 엠병할, 산데미 같은 책들 중에/ 노동자가 읽을 책은 두 눈 까뒤집어도 없고

화창한 봄날 오후의 종로 거리엔/ 세련된 남녀들이 화사한 봄빛으로 흘러가고/ 영화에서 본 미국 상가처럼/ 외국 상표 찍힌 왼갖 좋은 것들이 휘황하여/ 작업화를 신은 내가/ 마치 탈출한 죄수처럼 쫄드만

고층 사우나 빌딩 앞엔 자가용이 즐비하고/ 고급 요정 살롱 앞에도 승용차가 가득하고/ 거대한 백화점이 넘쳐흐르고/ 프로 야구장엔 함성이 일고/ 노동자들이 칼처럼 곤두세워 좆빠져라 일할 시간에/ 느긋하게 즐기는 년놈들이 왜 이리 많은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선진 조국의 종로 거리를 나는 ET가 되어/ 얼나간 미친놈처럼 헤매이다/ 일당 4,800원짜리 노동자로 돌아와/ 연장 노동 도장을 찍는다.

내 품 속의 정형 손은/ 싸늘히 식어 푸르뎅뎅하고/ 우리는 손을 소주에 씻어 들고/ 양지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는다./ 노동자의 피땀 위에서/ 번영의 조국을 향락하는 누런 착취의 손들을/ 일 안 하고 놀고먹는 하얀 손들을/ 묻는다./ 프레스로 싹둑싹둑 짓짤라/ 원한의 눈물로 묻는다./ 일하는 손들이/ 기쁨의 손짓으로 살아날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
해방의 물결이 시든 1980년대 말의 타락한 자본세상을 비판적으로 사색하기 시작한다. 1997년엔 옥중 에세이집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펴내기도 한다.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암울했던 그의 현실인식과 투쟁적 세계관은 변하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 자연의 생명적 세계, 포용과 화해의 세계로 확장된다. 1998년 8월 15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시인은 복역 8년 만에 출소한다. 이후 세계의 빈곤 지역과 분쟁 현장을 돌며 조용히 반전평화운동을 펼친다.

/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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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