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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6.10.13 18:37:33
  • 최종수정2016.10.13 18:37:40
밤새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던 빗방울 소리가 잠잠한 걸 보니 비도 바람도 많이 눅었나 보다.

가는 비가 창문을 타고 내리는 그 너머에는 간간히 빗길을 달리는 차량들이 새벽의 정적을 깨우고 있다.

아마 이 시간이면 시골의 촌부들이 고무신에 바지를 둥둥 걷어 올리고 개구리 소리 낭자한 논으로 물고를 보러 나갈 시간일 것이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조금은 이른 시간이지만 새벽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밖으로 나섰다.

가슴에 안기는 시원한 바람, 종아리를 간지럽히는 가는 빗방울이 삶에 포만감을 갖게 하는 그런 아침이다.

느티나무도 단풍나무도 밤새 불어 닥친 비바람에 시달렸는지 축 처진 나뭇가지에서 빗방울을 뚝뚝 떨어트리며 후줄그레하게 서 있다.

키 작은 풀잎들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고, 패랭이꽃, 달맞이꽃, 망초꽃은 비를 흠뻑 머금고 힘겨워 한다.

안쓰러운 마음에 풀잎에 살며시 손을 얹고 손에 와 닿는 여린 풀잎의 감촉을 느껴 본다.

모진 비바람을 이겨낸 작은 생명의 떨림이 전해 오는 듯하다.

하지만 그들은 비가 개여 햇살이 따사로워지면 그 뿌리를 더욱 튼실히 하고 그 잎을 더욱 푸르게 할 것이다.

빗물이 고인 웅덩이에 발을 담그자 발가락 사이로 생명의 물이 스미며 내 몸의 생기를 더한다.

멀리 산허리를 감싸고 있던 비안개들이 조금씩 허물을 벗으면서 한 여름의 녹음이 짙푸른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문득 어린 시절 보았던 산이 내게 다가왔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양지말에서 바라보면 너른 들판을 지나 저만치에 야트막한 산이 있었다.

우리는 그 산을 밤나무 산이라고도 부르고, 광태네 산이라고도 부르고, 헌병대 산이라고도 불렀다.

밤나무가 많아서, 아니면 산주의 이름이 광태라서, 일정시대 때 헌병대가 있어서 그렇게 불렸던 듯싶다.

어쨌든 그 산은 그리 높지도 크지도 험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산이었는데, 우리 동네 사람들은 누구나 밤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는 그 산을 보며 살았다.

그 산의 안쪽으로는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어른들은 그 산에 가면 백년 묵은 여우가 있어 아이들을 잡아 간다고 해서 우리는 가까이 가기를 꺼렸다.

동구 밖에서 연을 날릴 때면 연의 꼬리가 곧 그 산에 다다를 것처럼 멀리 날고는 했다.

하지만 끊어진 연을 찾으러 들판을 가로지르다 보면, 연은 늘 멀리 가지 못하고 논바닥에 처박혀 있고 산은 또 저만치 있었다.

그래서인지 제일 먼저 햇살이 비추어 오고,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바람이 불어오는 그 산 너머는 아주 먼 곳처럼 느껴졌고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학교를 다니고 나이가 들면서 좀 더 멀리 있는 산 너머 세상을 알게 되었다.

산 너머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수없이 많은 일들을 겪었다.

때론 기쁨에 가슴 벅차 했고, 때론 슬픔에 마음 아파하고, 때론 희망과 좌절 사이에서 번민하기도 했다.

그렇게 지내온 세월이 소중한 것은 모든 여행이 그렇듯 추억은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멀리 여행을 다녀 온 사람처럼 가까이 있는 것이 소중하고 편안한 나이가 된 것 같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에 정이 가고, 오래된 것에 손길이 가고, 소파에 기대어 나이 들어가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편안한 것은 왜일까·

뒤를 돌아다볼 여유도 없이 앞만 보고 살아 온 세월이었다.

가족과 이웃들에게 소홀했고, 자신의 진정한 모습조차 모르고 살아 온 시간들이었다.

비는 이제 완전히 그쳐 푸르고 작은 이파리 끝에 맺힌 빗방울이 아침 햇살에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잠시 후 사라질 작은 빗방울이지만, 그 속에는 자연의 싱그러움도 삶에 애환도 함께 담겨 있는 것 같다.

우리들의 삶 또한 작은 빗방울처럼 잠깐 왔다 사라져 가는 것 아닐까·

바쁘다는 이유로, 나도 힘들다는 이유로 눈여겨보지 않고 소홀히 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아침이다.

허리를 굽혀 여리고 가냘픈 풀잎을 바라본다.

비바람에 움츠렸던 매미들이 소리 높여 여름을 노래한다.

마음에 여유를 찾으니 보이지 않던 세상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소리도 들린다.

그리고 가까이 있어서 소중한줄 몰랐던 사람들, 멀리 있어서 잊혀져 가던 사람들이 다시금 내게 다가온다.

마음껏 아껴 주자, 마음껏 사랑하자!

서로 아끼고 사랑하기에 내일은 너무 늦을지도 모른다.

신찬인 수필가

푸른솔문학 25회 신인문학상

현 충북도의회 사무처장

전 충북도문화체육관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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