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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11.09 16:12:48
  • 최종수정2017.11.09 16:12:48
동트기 전 길을 나선다. 홀로 걷는 길에는 맺힌 이슬이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롭게 마음을 충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음악이 있는 삶'이라는 교육을 선택했다. 예상했던 대로, 여느 교육과는 다르게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간단한 이론과 함께 베토벤 모차르트의 고전음악과 중세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클래식을 감상하는 시간들로 진행됐다. 푹신한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들으니 영국 왕실의 세자가 부럽지 않았다.

그러나 음악을 듣는 것도 교육이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지루함이 밀려왔다. 무엇보다 클래식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었던 나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음악을 듣는 것 자체가 곤욕이었다.

마지막 수업시간이었다. "한 시간만 더 버티면 이젠 교육도 끝이 나겠지"라는 생각으로 강사님을 기다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강사님을 보니 낯설지가 않았다. 삼 년 전 청주 시민의 노래를 만들 때 노랫말 가사 선정 위원으로 활동 하셨던 분이었다. 지금도 이분은 지역에서 명망 있는 음악가로 활동하고 계신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강사님은 영상과 함께 노래 한 곡을 들려주었다.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용재 오닐(Yongjae ONeill)이 연주한 '섬 집 아기'의 영상이었다.

용재 오닐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화려함보다는 맨 얼굴의 소박함으로 한국인의 정(情)과 한(恨)을 연주하고 있었다. 2절을 연주할 때는 옆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고 조용히 눈을 감고 따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눈을 감고 따라 부르니 목이 메었다. 간단한 선율과 몇 마디 화성으로 이루어진 이 짧은 노래가 세대를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이토록 진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낯선 서양음악 보다는 어렸을 적 듣고 자란 멜로디의 익숙함 때문이었을까. 노랫말 속 가사가 그 당시 우리의 삶이었기에 그랬던 것일까. 젊은 아티스트 용재 오닐이 들려준 '섬 집 아기'의 애잔한 연주가 나에게는 그 어떤 음악보다도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었기에 바다를 사이에 두고 엄마와 아기를 이토록 애달프게 했단 말인가.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육지로 돈을 벌러 갔을까.

섬 집에 혼자 남아 집을 보던 아기가 애타게 엄마를 기다리다 지쳐 쓰려져 잠든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채우지 못한 굴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엄마는 발걸음을 재촉했겠지. 그 시대의 엄마들은 늘 부족한 삶을 살지 않았던가. 자식을 위해 달려가는 길은 노랫말 속의 모랫길보다도 더 힘들고 숨이 가빴으리라.

영상을 보는 동안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내도 섬 집 아기 엄마처럼 살아온 건 아닐까. 출근하는 엄마 바지를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울어대는 아기를 남겨둔 채 직장으로 향하던 아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내의 가슴도 미어졌겠지. 저녁에 돌아오면 미안한 마음에 아기를 등에 업고 섬 집 아기 자장가를 부르며 잠을 재우곤 했다. 포대기에 쌓여 등에 업힌 아기는 엄마가 불러 주는 자장가를 들으며 포근하게 잠이 들었다.

그 옛날 어머니도 그런 삶을 사셨다. 몇 마지기 되지 않는 농사일로 시동생에 자식들까지 살림을 꾸려가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뙤약볕 내리쬐는 한여름에도 어머니는 자장가를 부르며 밭고랑 그늘 아래 두 동생을 재워 놓고 하루 종일 밭을 매셨다. 매일 밤 정화수 떠놓고서 자식들 잘되기를 빌고 빌던 장독대에서는 가끔씩 어머니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집안일에 무관심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그 자리를 지켜야만 했던 삶의 무게 때문은 아니었을까. 고갯마루처럼 굽은 어머니의 등은 고달프게 살아온 지난날의 흔적들 아니겠는가.

세월이 흘러 이제는 섬 집 아기 노래를 듣고 자란 내 딸도 어느새 성인이 되었다. 아내가 늦게 귀가(歸家)하던 어느 날, 딸은 엄마를 기다리며 섬 집 아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어렸을 적 듣고 자란 노래야말로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진정한 문화유산이 아닐는지.

세상에 필요 없는 교육은 없다. 나태해진 마음을 새롭게 하고자 신청했던 교육이 나에게는 많은 감동을 주었다. 가족의 소중함을 알았고, 음악이 가슴을 울린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또 다른 목표를 세울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이제는 공직 생활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공직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새롭고 오달지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야겠다.

김규섭

충북대평생교육원 수필창작 회원

충북대수필문학 우수작품상 수상

푸른솔문인협회 회원

청주시청 공보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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