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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11.15 16:20:31
  • 최종수정2018.11.15 16:20:31
[충북일보] 갑갑한 마음에 옥상에 올라 까만 밤을 지새운다. 달빛 별빛이 포근히 감싸 안은 의자에 앉으니 남편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이사 오고 얼마 안 되어 옥상에 올라가다 깜짝 놀랐다. 비치파라솔 밑에 둥근 하얀 탁자 와 하얀 의자가 가지런히 주인을 기다린다. 사색에 잠길 때나 시상이 떠오를 때, 조용히 앉아 명상도 하려고 사 온 것이다. 어언 20여년의 세월이 차곡차곡 잠들고 있다. 곳곳 사방팔방에 남편의 손길 발길이 묻어있다. 먼저 집에서 살 때는 늘 꽃밭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여, 나는 남편의 마음을 담아 이 집을 지었다. 하루 일과 중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일층 주목나무가 서 있는 꽃밭으로 간다. 삼십 여년 키우는 소나무, 느티나무, 물푸레나무 등 분재와 영산홍 꽃밭에 서성인다. 벌레와 잡초를 뽑아주고 거미줄을 없애면서 물을 주다 나무와 분재와 꽃들과 속살거리는 듯했다. 오늘 따라 남편이 말없이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명상에 잠기다 글을 쓰는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한참을 뒤척이다 아프다며 소파에 들어 눕는다. 요즈음엔 자주 일어나는 모습이다. 한 숨이 땅꺼짐으로 번진다.

옥탑방 안에는 책들과 수십 개의 공로패, 감사패와 십여 개의 인삼을 유리긴 병들이 주인을 기다리지만 남편은 외면하는 것 같다. 사랑 방 빽빽한 삼천 여 권의 책들이 책꽂이에서 뽀얀 먼지를 이고 주인의 손 사랑을 기다리다 잠든 것 같다. 건강한 삶 일 때는 매일 매일 우편물이 전국에서 오는 따듯한 책들로 몇 권씩 우체통에서 기다린다. 오늘도 남편 품에 안겨 책 꽂지에 줄 서 있다. 한 줄도 아니고 두 줄로 포개어 오십 여년의 세월 속에서 주인을 기다린다. 빛바랜 누런 책들이 전 재산이고 보물이라던 남편이다.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며 어떡하지 좋아하던 이 보물이라며 좋아하던 책들을…….

책꽂이 맨 위에는 동백장과 훈장들이 16개가 매달려 찬란한 과거를 설명하는 것 같다. 취미가 다양하여 북쪽 벽 위 꼭대기서 부터 88 올림픽 상징 호돌이와 입체 경기 모양의 액자 2개가 걸려있다. 그 옆 큰 액자 속에는 24개국의 국기와 그 나라 상징인 도자기, 티스푼 손잡이에는 나라국기가 그려져 있다. 타원형의 숟가락에는 그 나라의 풍속화가 담겨있다. 서쪽 윗벽에는 녹색 둥근 모자가 손이 잘 닿지 않아 먼지를 폭 뒤집어쓰고 걸려있다. 모자 겉에는 백여 개의 배지가 모양도 색깔도 크기도 상징도 가지가지 사연을 앉고 서로 자랑하듯 붙어 있다. 노란 긴 테이프 천에는 넥타이핀 이십 여개가 마라톤 출발하는 선수들 마냥 차례차례 줄 맞춰 밑으로 걸려있다. 책꽂이 세로 벽에는 1988년 올림픽 상징인 손바닥크기의 5개 메달이 삼색 수실 끈에 매달려 있다. 중간 책꽂이에는 한국유네스코운동 31차대회, 13회 충북 도문화상수상자 김효동 이름이 적혀 있는 크고 작고 길고 짧은 명찰 수십 개가 여기저기 얽혀 포개어 졸고 있는 것 같다.

동쪽 작은 책꽂이 맨 윗칸에는 이집트서 사온 전갈과 인도의 작은 코끼리, 88올림픽 기념주화가 있다. 일층 칸에는 도자기 필통에 크기도 모양도 가지가지 길고 짧은 여러 개의 펜과 볼펜들이 빽빽이 꽂혀 있다. 뚝배기에 향을 맡는 다며 세숫비누 껍데기를 전부 베꼈다. 둥근 직사각형 마름모꼴 세모 네모모양 크기도 가지가지 두 그릇이 소복이 쌓여있다. 목에 거는 긴 줄 짧은 줄에 크고 작은 명패 30여개가 얼기설기 포개어져 잠들고 있다.

남편은 나보다 더 멋쟁이다. 가끔은 문학 세미나, 친목 모임에 갈 때는 목에다 긴 줄에 3~4센티미터의 직사각형의 누런 직지 책 목걸이를, 겨울철 모임 갈 때는 검은 티셔츠 앞에 턱 빠진 함박웃음의 이마주름 푹 팬 나무 하회탈을, 때론 5cm의 긴 삼각모양 도자기를, 행사 갈 때마다 문학 상징의 둥근 갖가지 모양의 크고 작은 긴 줄의 목걸이들을 걸고 거울을 본다. 요리조리 보며 폼을 잡다 미소 짓다 희망차게 층층계를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었다, 줄줄이 뽀얀 먼지가 쌓여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다 지쳐 목 길게 빼고 다음은 내 차례야 하며 기다리는 듯하다.

양복걸이의 정장 몇 벌과 반팔 긴팔 와이셔츠도 잘 입질 안아서 후줄그레 구겨짐으로서 몸을 맞대고 구겨짐으로서 몸을 맞대고 쓸쓸히 안겨있다. 밥만 먹으면 컴퓨터에 앉아 새 소식을 찾아보던 남편이 조용하고 보이지 않아 찾아보니 안방 침대에 또 누워있다. 요즈음 자주 보는 모습이다. 잠든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다 손을 이마에 대보니 따끈따끈하며 온기가 느껴진다. 추운데 가까이 하며 손 잡아주던 따뜻한 손길이다. 따뜻한 손길을 양손 마주 감싸다 난 또 다시 옥상에 올라 허공을 헤 맨다.

둥근 대보름달이 온 세상을 밝혀주고 있다. 당신과 아웅다웅하면서도 아이들과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했던 지난 날의 행복했던 달빛이건만 오늘은 눈물이 흐른다. 점점 사그러져가는 당신을 보면서 오늘도 달님께 당신의 건강을 조금만 더 걸을 수 있게 손녀들의 재롱잔치와 노랫소리를 더 듣고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빈다.

손찬국

푸른솔문학 신인상

푸른솔문학회 회원

초등학교교장 정년퇴임

충북지역교육협의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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