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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여름의 추억 - 아침 詩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35

  • 웹출고시간2017.07.27 17:33:11
  • 최종수정2017.07.27 17:33:11
[충북일보] 최하림의 시는 절망과 순수라는 동전의 앙면을 지향한다. 한쪽 면엔 한국현대사의 정치사회적 권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새겨져 있고, 한쪽 면엔 풍경에 대한 사색적 성찰을 통해 존재의 깊이를 탐색한 내면의 목소리가 새겨져 있다. 부조리한 현실과 역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그는 참된 삶을 찾아 떠나는 서정적 유랑자의 태도를 취한다.

그에게 현실은 자유가 억압된 죄의 땅, 어둠과 배반의 공간이었다. 이런 현실인식이 시인의 발걸음을 억압과 폭력이 사라진 자연의 풍경 속으로 옮겨가게 한다. 최하림 시의 주된 계절적 배경이 가을과 겨울이고, 시적 화자들이 결연한 의지를 품고 자연에서 참된 길을 찾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시에 나타나는 자연과 풍경에로의 몰입은 비극적 현실에서의 탈출과 극복이라는 의미를 띤다.

주목되는 것은 자연을 배경으로 할 때 시인이 풍경에 의해 지워진다는 점이다. 아니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풍경들에 의해 시인은 주체의 자리에서 내려와 풍경의 일부가 된다. 풍경들이 시간의 깊이를 지닌 존재, 세계의 주체로 승격된다. 이는 시인이 스스로를 낮추고 지움으로써 풍경을 높이는 겸허의 미덕인데, 시인은 왜 이런 낮은 자세를 취하는 걸까·

풍경들이 숨긴 상처와 고독을 주목하기 때문이다. 풍경 뒤에서 풍경의 일부가 되어 인간 존재의 한계와 시간의 깊이를 사색하려하기 때문이다. 사물과 세계를 향한 시인의 시선이 아이의 눈처럼 열려 있기 때문이다. 사물과 인간의 개체성이 보장되지 않는 공동체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인은 풍경을 이루는 사물들 하나하나를 존귀한 개체로 대접한다. 나무들 각각의 존재성이 보존되는 굴참나무 숲은 시인의 사회관과 세계관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최하림에게 풍경은 반성과 성찰을 낳는 고독한 사원(寺院)이고, 사물과의 만남은 곧 순수의 시간과의 만남이다. 그의 시에 풍경과 함께 아이들이 빈번히 등장하는 것은 이런 순수 지향성 때문이다. 그는 반성적 자기 낮춤을 통해 나무와 바람과 강물을 정관(靜觀)하고, 풀잎과 나뭇잎이 마르는 소리를 아이의 마음으로 들으려 한다. 그렇게 시인은 풍경 속에 잠재된 고요와 적막, 비탄과 환희의 음악을 들으며 순수의 시간을 발견한다. 병마와 싸우며 사물들의 풍경을 통해 삶의 활력을 꿈꾸고 저녁을 맞는다. 마침내 밤이 오고 산과 강과 마을이 어둠에 묻히듯 시간의 장막 속으로 그는 풍경들과 함께 고요히 사라진다.

아침 詩 - 최하림(崔夏林 1939~ 2010)

굴참나무는 공중으로 솟아오른다

해만 뜨면 솟아오르는 일을 한다

늘 새롭게 솟아오르므로 우리는

굴참나무가 새로운 줄 모른다

굴참나무는 아침 일찍 눈을 뜨고

일어나자마자 대문을 열고 안 보이는

나라로 간다 네거리 지나고 시장통과

철길을 건너 천관산 입구에 이르면

굴참나무의 마음은 벌써 달떠올라

해의 심장을 쫓는 예감에 싸인다

그때쯤이면 아이들도 산란한 꿈에서

깨어나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검은 숲 위로

오른다 볼이 붉은 막내까지도 큼큼큼

기침을 하며 이파리들이 쏟아지듯 빛을

토하는 잡목 숲 옆구리를 빠져나가

공중으로 오른다 나무들이 일제히

손을 벌리고 아이들이 일제히

손을 벌리고 아이들은 용케도 피해 간다

아이들의 길과 영토는 하늘에 있다

그곳에서는 새들과 무리지어 비행할

수가 있다 그들은 종다리처럼 혹은

꽁지 붉은 비둘기처럼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포르릉 포르릉 날며 흘러

내리는 햇빛을 굴참나무처럼 느낄 수 있다
2010년 작고하기 두 달 전, 시인은 인생의 마지막을 예감한 듯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다.

"마침내 나는 쓰기를 그만두고 강으로 나갑니다. 죽은 자들과 대면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나는 흐르는 물을 붙잡으려고 하는 순간에 강물은 사라져 버리겠지요. 그런데도 내 시들은 그런 시간을 잡으려고 꿈꾸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 함기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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