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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순

전 충북문인협회 회장

 커피를 마시며 이 글을 쓴다. 커피는 이제 한국인들에게 없으면 금방이라도 난리가 날 것 같다는 말을 입증할 만 한 두 가지 예를 들어 본다. 하나는 미국인으로서 한국에 귀화한 스스로 툭하면 순천 촌놈이라고 자랑스럽게 유머를 쓰는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가 말했다.

 "미국가서 공부하는 동안 자판기 커피가 마시고 싶어 아주 환장하겠더리닝께 하하하."

 다른 하나는 1년에 한국인이 마시는 커피가 무려 25만 잔 이라는 통계다. 그렇다면 한 사람이 1년에 몇 잔씩이나 마실까. 그 또한 무려 500잔 씩이라 한다. 참으로 놀라운 숫자가 아닌가.

 본래 커피는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가 원산지로 커피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 즉 커피콩을 주워다 끓여 먹은 것이 출발이었다. 향기가 매우 좋고 자극적이어서 그 후 많은 사람들이 마시기 시작 한 것이 첫 단계였다.

 그것이 아랍문화원으로 들어가 확산된 이유는 그들의 종교가 술을 금지하기 때문에 커피를 애용한 것이었다. 아랍의 한 나그네가 모닥불을 피워 놓은 채 깜빡 잠든 사이 무심코 커피통을 발로 차서 모닥불에 쏟아졌다. 그가 잠을 깨니 조금 탄 커피에서 썩 맛있는 냄새가 풀풀 나서 그 뒤로 커피를 볶아 먹는 방법을 모두 택한 게 두 번째 단계의 발전이었다.

 터키군이 이집트와 싸워 승리하고 카이로에 입성하자 그들이 후퇴하다가 남기고 간 커피를 마셔보니 향기가 짙고 기분이 아주 상쾌해 인기가 높았다. 그들은 볶은 콩을 다시 손대서 가루를 만들고 그것을 뜨거운 물에 끓인 채 가루까지 마셨다. 그게 세 번째 단계의 발전인 셈이었다.

 그리고 1683년 터키의 오스만투르크군이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공격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정부군과 기독교 국가의 연합군에 의해 보기 좋게 패배했다. 그 패군들이 남기고 간 커피를 승전자 들이 습득하여 전 유럽에 본격적으로 퍼져 나갔다. 유럽 상인들이 이스탄불로부터 그 소식이 널리 전해진 터라 커피를 전리품으로 획득하여 얼씨구나 하고 일삼아 유럽 전역에 골고루 분포 시칸 꼴이 되어 커피를 마시지 않은 나라가 없는데 까지 이르렀다.

 파리로 런던으로 로마로 나폴리로 유럽 구석구석까지.

 그러다가 프랑스에서 그 가루를 주머니에 넣고 물을 끓여 커피 물만 마시는 커피가 이른바 내린 커피로 네 번째 단계의 발전이었다. 가루커피나 내린커피는 근대를 지나 현대 우리가 마시는 내용들이다. 지금 수많은 종류들의 커피가 사람들의 입맛을 돋운다. 그 후 헤아릴 수 없는 발전한 커피 종류가 많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맨 처음 들어 온 것은 1830년 프랑스의 천주교 신부들에 의해서이고 대중에게 스며든 것은 60년 뒤인 1890년 임오군란 이후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커피를 마신 사람은 기록상 고종이라 한다. 국민 전체에 까지 속속들이 파급된 것은 그나마 해방 후였고 계속 밀물처럼 우리들 일상에 물결쳐 집집마다 심지어는 깊은 산골까지 그 물결이 가득 넘치고 있다.

 그리고 해방을 맞은 지 70년을 넘기고 오늘날은 하루에도 커피가 없으면 난리가 날 만큼 자신도 모르게 중독이 된 것이었다. 그러나 하루에 두세 잔 마시는 사람은 보통의 사망률에서 10%가 낮을 만큼 혈압과 암 기타 병을 막아 준다는 발표가 나갔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먹는 믹스커피 자판기 커피는 설탕의 분량이 너무 과대해 그 효과는 없애고 오히려 해로울 지경에 이른다. 그 때문에 속칭 커피의 3요소가 우리의 눈길을 끈다. 하나, 지옥처럼 뜨거울 것. 둘, 소태처럼 쓸 것. 셋, 달 없는 밤처럼 검을 것. 그런데 지금 우리는 마시는 커피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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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