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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10.09 18:05:17
  • 최종수정2018.10.09 18:05:17

임찬순

전 충북문인협회회장

조선왕조는 1392년 7월 17일 수창궁에서 탄생했다. 그러니까 그날이 조선왕조의 생일인 셈이다. 그러고 나서 1910년 8월 29일 타살 당했다. 또 그러니까 그날이 조선왕조의 사망일인 셈이다. 그렇게 519년의 수명을 다 했다. 그토록 힘겹게 27명의 집주인들이 그 왕조라는 수레를 이끌고 가는 중에 악명 높은 침략자 일제가 뛰어들어 총칼로 채트려간 것이었다.

그날 왕조는 비참하게 목숨을 잃고 강토는 무참하게 빼앗긴 것이었다.

그러나 그 조선이 일생동안 엮어 놓은 파란만장한 이야기, 연산과 광해가 맥없아 쫓겨나고 두 차례의 큰 국난과 그때 왕들의 어처구니 없는 무능과 비열함과 조정과 왕들이 빚은 파국, 그런 가운데서도 유교를 통해 드높은 도덕의 튼튼한 기둥을 세운 긍지, 위대한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이순신의 빛나는 애국정신 등에 관한 사연은 너무 장황하여 여기서는 가족사에 관한것만 언급하고자 한다.

이성계가 최고의 장군 지위까지 오른 실질적인 실력자로서 압록강을 건너 드넓은 만주를 정벌하는 와중에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고려를 쓰러뜨리고 수창궁에서 즉위하여 왕위에 오른 것이 57세였다. 가장 늦은 나이였다. 그와 반대로 가장 어린 나이에 즉위한 왕을 보통 우리는 단종(12세)이라고 생각하지만 명종도 그 나이에 왕좌에 털썩 앉았고 23대 순조는 11세였으며 마찬가지로 그 나이에 고종도 왕이 되었다.

심지어는 헌종(24대)은 불과 7세라는 초등학교 1학년쯤의 어린 소년이 그 무거운 책임을 젊어졌다.

그들은 그 때문에 도저히 그 엄청남 책무를 감담할 만한 능력이나 의지 또는 식견이 턱없이 모자라는 어린 소년들이어서 누군가 막중한 국사를 대행해야 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예가 대원군이었다. 그리고 수양대군이었고 안동 김씨들이었다. 수양은 2년 3개월 만에 어린 조카를 내쫓고 영월로 귀양 보냈다가 살해했다. 그때 17세였다. 그렇게 부작용도 많았다.

왕가에서는 많은 왕자를 두어 튼튼한 울타리를 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의무중의 하나였음에도 무려 4명의 왕(단종, 인종, 경종, 순종)이 슬하에 아들은커녕 딸 한명도 생산하지 못했다. 그럴라치면 그 후계자를 둘러싸고 왕가 및 권력을 쥐려는 자들의 암투가 격심하여 나라가 휘청거리고 숱한 비극이 일어났다.

그와 반대로 태종은 무려 자녀를 29명이나 낳았다. 두 번째가 9대 성종으로 28명 정종은 23명이고 세종은 22명이었다. 정종은 옥좌에 앉은 지 가까스로 2년2개월에 지나지 않은데 왕비 말고 후궁을 자그만치 10명이나 들였다. 성종은 가장 많은 11명의 후궁을 거느렸다. 세종은 5명의 후궁이 있었다.

역대 왕 중에서 본처(왕비)한 사람과 일생을 보낸 경우는 기록상으로 2명에 그친다. 단종과 18대 현종뿐이었다. 단종은 12세에 즉위하여 2년 남짓 그 자리를 지키고 너무 어린 나이어서 후궁을 들릴 새가 없었고 격변 속에서 경황이 없었겠으나 현종은 19세 왕이 되고 15년이나 권좌에 앉았고 34세까지 살았으면서도 1남 3녀를 두어 무탈하게 숙종이 대를 이은 특이한 예다.

제일 오랫동안 장수한 사람은 영조인데 31세에 즉위하여 83세까지 살면서 무려 51년이나 버텼다. 그러나 사도세자의 처절한 비극도 만들어 냈다. 청주의 이인좌의 난도 그때 발생했다.

27명의 왕 가운데서 외국(중국) 땅을 밟은 사람은 정확하게 둘이었다. 17대 효종 부자였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삼전도에 나가 청태종에게 무릎 끓고 삼고구례 그 치욕을 당하며 항복 조건으로 두 왕자( 소현세자 봉림대군)가 청에 끌려가 10년 가까이 인질로 잡혀있었다. 그 때문에 중국어에 능통 할 정도라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그때의 봉림대군이 훗날 효종이고 그 아들(현종)은 아예 청나라에서 태어났다. 그 같은 가족사가 파란 많은 조선왕조사를 엮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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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