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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순

전 충북문인협회회장

악명 높은 일제침탈기의 대문을 활짝 열어 놓은 것은 8월이었다.

그러니까 그해 경술년(庚戌年)인 1910년 8월 29일(음력 7월 25일) 월요일이었다. (그러나 이미 8월 22일 합방조약은 조인되었다)

그날은 국가적으로 최악의 날이었고 민족사에서 씻을 수 없는 치욕과 재앙의 날이어서 경술국치일(庚戌國恥日)이라 일컫는다.

그런데 그 악명을 떨치던 일제강점기의 문을 쳐닫고 완전히 폐쇄시킨 것도 공교롭게도 또한 8월이었다.

또 그해 을유년(乙酉年) 1945년 8월 15일(음력 7월8일 수요일) 그날을 당시에는 을유해방일(乙酉解放日)이라 했고 지금은 광복절이라 한다.

그 통한의 세월은 우리에게 '죽음의 터널'이었다. 보통 '일제 36년'이라 하지만 날짜로 따지면 35년에서 보름 정도가 좀 모자라는데도 왜 모두 구태여 36년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함석헌은 지적한 바 있다.

우정문고에서 펴낸 '미명(未明) 36년 12,768일'이란 책이 있다. 그날들을 매일 일기 쓰듯 사건과 중요한 내용들을 적은 총 2천713면 전 5권에 이르는 책이다.

'일제는 조선을 얼마나 망쳤을까(김삼웅)'라는 책은 1914년 벌써 우리 국토의 총면적 50.4%의 토지와 임야를 채트렸다 한다. 그 때문에 농민의 7.80% 정도가 소작인으로 전락하고 공출이라는 이름으로 빼앗아간 품목이 80종에 이른다는 것이었다.(일제가 1921년 수탈해간 쌀이 300만 석이고 1928년에는 700만 석으로 불어났고 일제 말에는 그 3배가 넘었다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주에게 바치는 소작료는 총생산량의 70%에 이르고 심할 경우는 80%라는 기록도 있다. 그때 우리 국민의 70%가 문맹이었다는 것이다. 조선인을 징용이라는 이름으로 강제로 끌고 가서 참담한 노예로 망가뜨리고 끝내 죽고 행방불명이 된 자들이 1945년 3월 통계로 무려 60만4천500명이고 1876년 병자수호조약까지 따지면 800만이 상회한다는 것이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치가 떨리는 정신대라는 명분으로 취직시켜준다고 속여서 종군위안부 즉 성노예로 끌고 한 여성(14세부터 40세까지)이 1831년부터 1945년까지 어떤 기록에는 30만을 헤아린다고 했다.

어찌 그뿐이랴 창씨개명, 궁성요배, 황국신민서사, 조선어 말살정책 등 우리 얼과 정신마저 빼앗고 짓밟고 마구 깨뜨리는 죽음의 터널을 1만2천768일이나 견디고 살아왔다.

그 첫날 '한국 황제는 한국 정부에 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일본 황제에게 양여 한다'는 내용을 비롯한 전 8조에 이르는 합병서를 국내외 공포했다. 국호는 대한제국에서 조선으로 바뀌고 그날부터 활복자살하는 애국자들이 속출했다.

1945년 8월에는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 일본(이미 5월에 독일 이태리는 패망했다.)이 격심한 패망의 한복판에 접어들고 있었다.

6일(월요일) 미군이 일본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하여 20만이 단번에 죽자 일본은 기절했다. 3일 후에 나가사끼에 두 번째 원폭이 떨어져 일본은 사색이 되어 15일 일본 왕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악한들은 돈을 무진장 찍어내어 우리의 경제를 크게 혼란시켰다. (패망 전보다 8·15 그날부터 미군정이 들어온 9월 8일까지 화폐 발행고 70%가 늘어났다.)

그러나 지금 8월이 와도 그 아픔과 불행을 되새기는 사람은 없다.

'역사를 외면하는 민족은 역사로부터 보복을 받는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혹시 우리가 그런 보복을 받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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