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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1.22 17:13:34
  • 최종수정2019.01.22 17:13:34

임찬순

전 충북문인협회회장

한 바다에 가을 빛 저물었는데/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떳구나/ 가슴에 금심 가득하여 잠 못 드는 밤/ 새벽 달 창 너머로 칼과 활을 비추네, 이 뛰어난 시가 누가 쓴 것인지 아는 사람은 민망하게도 흔치 않다.

그러나, 임진왜란 하면 화려한 무지개처럼 떠오르는 이름은 다 기억한다. 바로 그가 쓴 사언절구四言絶句의 한시를 이은상이 번역한 것이다.

우리는 이순신하면 금방 유성룡이 뒤따라 생각난다. 그 치열했던 전란 속 눈코 뜰 새 없는 와중에서도 이순신은 「난중일기 7권」을 유성룡은 전쟁이 끝난 뒤 「징비록」을 남겼다. 그 기록들이 얼마나 소중한 역사적 가치가 있느냐 하면 난중일기는 국보 76호로 지정되고 징비록은 132호로 후세에 빛나고 있다. ( 징지록을 읽다가 충격을 받은 것이 있다. 다급한 전란 중 선조는 아침 나절 유성룡을 영의정에 임명했다가 저녁나절 파직 시킨 장면이었다. 난중일기 가운데 한산대첩은 임진왜란 7년 전쟁에서 가장 빛나는 꽃이고 태산 보다 큰 승리의 깃발이었다.) 이순신과 유성룡 그 반대로 가장 부정적인 팀은 선조와 원균이었다. 흔히 이순신과 비교되는 사람은 삼국지의 제갈량이다. 그 두삼은 공통된 점이 많다. 그들은 나라의 운명을 짊어지고 치열한 전쟁을 하다가 장엄하게 전사했다. 그때 두 사람이 공히 54세였다. 사후 두 사람은 충무忠武라는 시호를 받았는데 이순신은 충무공公이고 제갈량은 충무후候였다. 본래 접미사 일 때 公은 귀인 또는 상대방을 높일 때 쓰이고 候는 제후라는 작위를 이르는데 그것조차 이순신의 경우는 그가 전사한지(1598년 11월19일) 무려 45년이나 지난 인조 21년(1643년)에 사서야 받았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의 주군은 정 반대였다. 48세 유비는 28세의 제갈량을 세 번 찾아가 일생 스승으로 한결같이 모셔 삼고초례라는 유명한 사자성어를 남겼으나 선조는 중요한 전쟁 중에 왕명을 어겼다며 이순신을 끌어다가 쳐 뼈를 뿌러뜨리고 이등병으로 강등시켜 백의종군이라는 사자성어를 사람들 입에 오르게 했다.

1592년 4월 13일 전쟁이 터지고 20일 만인 5월 3일 한성이 왜군에게 짓밟혔다. 그러나 3일전에 선조는 백성들과 종묘와 왕궁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허겁지겁 도망쳤다. 그리고 왜군은 6월 14일 평양성을 들이쳤으나 선조는 또 3일전인 11일 그곳을 버리고 22일 의주에 도착했다. 명나라로 망명을 요청했으나 거절 달했다 한다. 그때 왜군의 기마대가 한껏 추격했다면 선조는 사로 잡혔을 것인데 그들은 평양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 중요한 때 왜 그랬을까 징비록에 의하면 지원군 10만을 기다렸다한다.

그러나 그 해 7월 8일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왜군 73척을 격파하여 대부분 바다 속에 수장시켰다. 그 한산대첩은 임진왜란의 숨통을 단숨에 칵 틀어쥔 쾌거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순신이 남해와 서해 전체를 완전하게 장악한 때문이다. 즉 두 넓은 바다의 제해권制海權을 한 손에 검어쥔 것으로 하여 첫째 왜군의 수륙병진정책을 무참하게 깨뜨려 곡창지대로부터 군량미를 수탈하여 보급하려는 계획이 틀어져 왜국으로부터 직접 운반했다 그 운반에 많은 군대가 그쪽으로 분산되어 전략이 크게 약화됐다. 반대로 우리는 그곳에서 군량미를 확보했다. 둘째 징비록에서 밝힌 대로 서해안을 통해 왜군 10만명을 평양으로 지원하려는 일이 막혀 선조와 조선을 덮치려는 위기를 막고 왜군을 평양에서 철수시켜 전쟁을 마무리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한산대첩은 왜국의 침략 야욕을 보기 좋게 꺽어 놓은 세계해전 사상 빛나는 승리를 이룩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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