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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순

전 충북문인협회 회장

그날 새벽 그 아름다운 항구에 배가 닿았을 때 뱃머리에 올라가서 내가 바라 본 풍광은 감동 그 자체였다. 1천년이 넘도록 동로마(비잔틴)제국의 수도였고 실크로드의 종착지이면서 동서양을 한꺼번에 품은 동서 문화와 무역의 교역지이고 소피아 성당이 찬란하게 존재감을 나타낼 뿐 아니라 2천년의 성벽이 아직도 튼튼하게 버티고 있는 역사의 현장과 마주쳤기 때문이다. 그리스와 터키 등의 화려한 미항을 다니며 참으로 가슴 설레는 경치와 역사 위에 우뚝한 문화재와 건축사에 빛나는 성당 그리고 뼈에 사무치는 교훈과 맞닥뜨린 때문이었다. 단적으로 말하면 그 모든 특징들을 집약적으로 갖춘 거대한 도시가 바로 터키의 이스탄불이었다.

우리가 배에서 내려와 시가지를 관광할 때 그곳 대학의 한국 유학생인 가이드가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거리를 지나다 한 목욕탕을 가르치며 저 건물은 오백년이 넘었다는 것, 당시 국호 남대문이 불탄 뉴스가 그곳까지 퍼지자 터키 학생이 그 건물 건축연대를 물어서 오백년이란 말이 안 나와 천년이 됐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국보가 천년 밖에 안됐다는 게 말이 되느냐 우리 집도 지은지 천년이 지났는데 하고 뽐냈다고 한다. 기회가 있어 그 집을 가보니 2천년이 된 성곽 안을 담벼락으로 집을 지어 진짜 천년이 넘어 보였다 했다. 우리가 더욱 놀란 것은 5천개의 상점을 하나로 묶어 놓은 거대한 상가의 길의 갈래가 20개나 나 있어 한번 길을 잃으면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거대한 미로였다. 그곳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로마에 없는 것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하더니 정말 그곳에 없는 것은 세계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330년 5월 11일 월요일 터키의 비잔틴(현 이스탄불)에 콘스탄티누스를 첫 황제로하는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이 건국되었다. 그로부터 그 도시는 황제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로 지명을 바꾸고 벌써 개국 초기에 「소피아성당」을 건축했다. 그리고 파란 많은 역사를 엮어 가면서 가장 전성기 때 영토는 동쪽으로 아르메니아 산맥부터 서쪽으로는 스페인까지 북쪽으로는 흑해와 다뉴브강부터 남쪽으로는 아프리카 연안까지 방대했다. 그러나 1천여년이 지나는 동안 노쇠하여 15세기에는 가까스로 콘스탄티노플을 포함한 몇 개의 도시만 남아 있는 소국으로 전략하다가 파국을 만난 것이었다. 동로마제국은 건국부터 1453년 5월 29일 화요일까지 1123년 18일 동안 장구하게 이어졌다. 시조 콘스탄티누스 황제부터 마지막 콘스탄티누스 11세까지 88명의 황제가 이끌었다.

마침내 동로마제국 파국이 들이 닥쳤다. 1453년 4월 5일 목요일부터 그 해 5월29일 화요일까지 54일간을 말한다. 정복욕에 불타는 21세의 젊은 슐탄메메드 2세는 오스만투르크군 15만을 직접 이끌고 콘스탄티노플 성문 앞에 나타났다. 동로마군은 그 절반쯤 되는 7천명도 채 안 되는 병력으로 결사적으로 방어했으나 끝내 파국을 맞은 이유가 야사野史에서는 케르카포스타 문을 닫지 않은 엄청난 실책으로 터키군이 그곳으로 물밀 듯 쳐들어온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사正史에서는 성안의 모든 사람들이 온 힘을 모아 성벽의 모든 구멍을 막았다고 적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와 세계 생활방식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웠으나 식량이 떨어져 굶주리고 지쳐서 스스로를 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절망에 떨어졌다고 한다. 그때 황제는 황제로서의 모든 옷차림 수행원들을 다 버리고 투루크군 복장을 하고 그 속에 뛰어들었고 그들 시체 속에 내던져 아무도 찾지 못했다. 아무리 메메드가 총동원령을 내려 반드시 찾으러 소리쳤으나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자 메메드 술탄은 투르크군에게 3일간 약탈 살인 강간 등을 허용하여 도시는 순식간에 4천명이 죽고 5만명 이상의 동로마제국 구성원들이 포로로 잡혀 아수라장이 되었다고도 했다. 추악한 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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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