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임찬순

전 충북문인협회 회장

물결이 사나웠던 19세기를 보내고 나니 집채 같은 파도가 세계를 뒤덮은 20세기와 맞닥뜨렸다. 그 와중에서 조선왕조는 5백년간 성리학을 제외한 모든 새 학문을 억압했고 자유경제 행위가 완전 통제되었으며 국가가 위기에 던져져도 총칼 갖춘 군대도 거의 없고 국제적으로는 쇄국과 무지와 무능의 세월을 보낸 병든 왕국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총칼 든 일제가 나타나 1905년과 1910년 두 차례에 걸쳐 조선왕조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때부터 우리는 태극기를 어디에도 꽂아놓지 못했다. 심지어는 을유 해방와도 마찬가지였다.

1946년 새해 1월1일 비로서 태극기는 성조기와 나란히 당당하게 우리의 하늘에 펄럭였다. 성조기와 어깨동무를 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우리의 하늘과 나라 전체를 성조기와 태극기가 공유하고 공존한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즉 정치적으로는 공유가 아니었다. 그때는 「미군정 3년 시대」였기 때문이다. 1946년 새해는 신탁통치 문제로 온 나라가 들끓고 한국인은 거대하고 강렬한 단합을 통하여 신탁을 반대하자 미군정은 그것은 쿠테타라고 비명을 질렀다.

그때, 뜻밖의 내부 반란이 일어났다. 박헌영이 연말에 북한에 가서 소련으로부터 찬탁의 지령을 받아오자 공산주의 전체가 돌연히 그쪽으로 돌아 선 때문이었다. 그들은 나라를 온통 들쑤시고 대 혼란으로 빠뜨리고 마침내 뒷날에 가서는 동족의 가슴에 총을 쏘아대는 전쟁까지 일으키는 악행을 저질렀다.

그해 3월 20일 덕수궁에서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린 이래 3년간 계속되었다. 그런 속에서 박헌영 패들은 가난한 자들을 앞세우고 볼모로 잡고 대세를 쥐기 위해 극빈한 농민들(70%가 소작인)에게 크나큰 미끼를 던졌다. 사자성어 두 구절 8글자였다. 토지를 무상몰수 無償沒收, 무상분배無償分配한다는 것이었다. 돈 한푼 안내고 땅을 빼앗고 무조건 다 내준다는 것이었다. 그 엄청난 미끼를 물지 않는 소작농민들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그것은 거짓이었다. 그와 동시에 미군정의 경제 실패가 겹쳐 전국에 농민을 비롯한 많은 단체가 항쟁을 하고 파업을 일으키고 심지어는 거센 폭동까지 야기 시켜 온 나라가 진구렁이에 빠졌다. 그 혼란 속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남로당이 주동하고 앞장섰다.

그리하여 보다 못한 미군정은 공산주의자들을 체포 구금했다. 그 바람에 박헌영은 상여 속에 숨어 몰래 북으로 도망쳤다.

그것을 전후해서 「좌우합작」의 카드가 나왔고 미군정이 그것을 후원했다. 김규식등의 중도우파와 여운형등의 중도좌파가 손을 잡고 신탁통치를 받아들이자는 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좌파 쪽에서 자신들의 이익과 이념을 지나치게 주장하여 깨졌다.

이승만은 「통일정부 수립이 어려우면 남한 단독 수립」을 주장했고 김구는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한다.」라고 말했다. 해방정국의 대혼란의 단면이었다.

그런 혼란 속에서도 한국인들이 얼마나 토지개혁을 열망했는지를 깨달은 미군정은 이른바 신한공사가 쥐고 있던 귀속농지를 불하했다. 일종의 토지개혁이었다. 1948년 8.15까지 85%가 이루어졌고 1952년까지 91.4%가 성사되어 거의 다 이루어진 상태였다.

신탁통치를 위한 미소공동위원회가 59차례나 열렸어도 아무 성과도 못 얻자 1947년 11월 14일 유엔 전체회의에 넘겨져 남한의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안이 43대0으로 가결되었다. 다음 해 유엔 감시 하에 5.10선거가 실시되었다.

그것은 1910년 8월 29일부터 내려진 태극기가 마음껏 우리의 하늘을 지킨다는 뜨거운 우리의 열성과 꿈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극기가 부재했던 하늘 아래서 우리는 얼마나 가혹하고 참담한 고통을 겪었는가를 생각하면 참으로 눈물겹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