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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순

전 충북문인협회 회장

 9월이 왔다. 9월은 가을에 속하고 크게 그 가을은 추수하는 풍요한 계절이다. 그리하여 '가을날'이라는 라이나 마리아릴케의 아름다운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하느님,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햇빛 뜨거운 지난여름이 있었으므로 오곡백과가 자라고 영그는 과정이 위대했다는 뜻이겠으나 아주 단순하게 우리의 지난여름은 참으로 무더웠다. 가히 폭염이었다. 그러나 넓게 지난 시대 8월은 우리 민족에게 가장 거대한 역사의 문이 꽝하고 닫히는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경천동지할 조선왕조의 패망은 우리 민족에게 캄캄한 지옥 같은 밤과 우리 강토를 뒤엎는 폭풍과 폭우가 최대한 몰아쳐왔다. 이른바 1910년 8월 29일의 경술국치(庚戌國恥)였다.(사실은 8월 22일 결단을 내놓고 일주일 동안 눈치를 보고 동향을 파악하는 시간을 가졌다).

 꽝 닫힌 문을 영구히 열지 못하게 하겠다는 악행을 증명하는 엄청난 서류 즉 국서가 있다. 이른바 '한일합방 8조약'이다. '1조 한국 황제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히 그리고 영구히 일본국 황제 폐하에게 양여함'이라는 것이 그것이었다. 한 나라의 국왕이 '완전히 그리고 영구히 통치권을 넘겨주겠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 배후에는 일제 군국주의적인 폭력적 위협이 있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국왕이 그런 것에 의지를 꺾고 나라의 문을 닫을 수 있단 말인가. 조선왕조 500년이 넘는 동안 국가에 대한 충성, 이른바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을 입버릇처럼 달달 외운 대신(大臣)들이 막판에 반역을 한 때문이었다. 또 고종 자신 때문이었다. 을사조약 때는 을사 5적, 을미년에는 을미 7적, 경술국치에는 경술 9적이 역적의 마각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들 가운데 역적 행위를 두 차례 범한 사람이 4사람이 되고 그 가운데서 이완용은 세 차례나 반역에 온몸을 던진 대역적이었다. 첫 번은 학부대신으로 두 번째는 참정대신으로 세 번째는 총리대신이 돼 제조국의 숨통을 있는 힘을 다해 완전히 끊어 놓는데 맨 앞장서서 미친자 처럼 날뛰었다. 나라를 팔아먹은 그 댓가로 15만 엔 약 30억 원 받았고 백작 벼슬(뒷날 후작)벼슬을 받았다.

 그때 나라의 문이 닫히고 죽음의 터널을 지나온 1만2천768일만에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닫힌 문이 열렸다. 그러니까 패망한 뒤 8월이 36번째 돌아 온 날은 1945년 8월 15일 이었다. 그날을 우리는 보통 해방(解放)이라고 또는 광복(光復)이라 칭한다. 그날은 1만2천768일의 끝이었다. 말대로 그곳부터 빛나는 햇빛이 쏟아지는 세월을 끝없이 누렸을까 아니다. 바로 그날 우리는 국토가 두 토막 나고 민족은 둘로 쪼개진 채 서로 격심한 갈등의 칼날을 맞대는 것으로 새 시대를 출발했다. 그로부터 74번째 맞는 지난달 8월 광복절은 그러나 릴케의 시대로 위대하지 못했다.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두 동강난 나라는 모두 5개국이었다. 그런데도 다른 나라는 나름대로 제 나라의 분열만은 막고 있음에도 우리는 최악의 전쟁을 치르고도 통일은커녕 그 전쟁을 일으킨 침략자들은 반성은 커녕 핵까지 지니고 다시금 위협을 최대로 높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월맹처럼 공산국가로 통일된다는 것은 큰 재앙이다.

 왜 우리는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이고 불행했던 일제 36년 1만2천768일 그 죽음의 터널 앞과 뒤가 그처럼 아픔으로 통한으로 연결되는 것일까. 하늘은 그것을 이길 능력이 있는 자에게만 시련을 준다고 했던가. 그렇게 우리는 이 시련을 이길 힘과 능력이 진정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역사를 잊는 민족은 역사로부터 보복 받는다'고 했다. 우리는 그 1만2천768일의 전 후를 언제나 가슴에 새겨야 그 시련을 극복할 것이었다. 올해가 경술국치로부터 109년이 되는 해여서 더욱 뼈에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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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