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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11.26 16:47:34
  • 최종수정2019.11.26 16:47:34

임찬순

전 충북문인협회 회장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말은 없다」는 유명한 금언을 남긴 사람을 모르는 자는 없다. 나폴레옹은 코르시카라는 이태리에 속하는 작은 섬에서 태어났다. 아니다. 그가 태어나던 해 그 섬은 프랑스령으로 소속이 바뀌어져 그는 프랑스 인으로 태어난 것이었다. 만일에 원래대로 그곳이 이태리에 속했다면 훗날의 나폴레옹은 없었을 것이었다. 하늘이 그에게 큰 신작로를 닦아준 형국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프랑스 역사상 가장 인기 높은 인물 잔 다르크. 드골과 함께 훌륭한 애국자로 손꼽히는 세 사람 중에서 오랫동안 1위를 차지했다. 또한 비스마르크, 레닌, 손문 등과 함께 세상을 바꾼 위인 중 한 사람이라고 테일러는 말했다.

그러나 그는 코르시카의 시골뜨기라는 놀림 속에서 파리 유학 생활을 가난하고 고독하게 보내면서 성적은 53명 중 48등이라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수학은 단연 뛰어났고 역사와 지리도 최상급 성적이었다. 그는 사관학교를 나와 16세에 포병 소위가 된 이래 20대에는 벌써 프랑스 혁명에서 가장 출세한 군인이 되어 이태리 원정군 사령관, 이집트 원정을 거처 30대에 제 1통령으로 선출되어 프랑스 제1의 실권자에 올랐다. 그의 키는 당시 프랑스 남자 표준 보다 조금 더 컷다 한다.

나폴레옹은 「나는 일생동안 오십여차례의 큰 전쟁만 치루었는데 거의 다 승리했다」고 술회했다. 사학자들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전쟁만 수무번이었는데 모두 대승을 거두어 일약 알렉산더 시저 급에 속하는 명장이었다고 언급했다. 프랑스 최초의 평민 출신 황제로 가장 넓은 프랑스의 영토를 확장시켜 드골도 「나폴레옹은 일생을 프랑스만을 위해 산 애국자다」고 찬양했다.

그는 「전쟁의 신」이란 칭호를 받을 만큼 엄청난 전쟁의 업적을 남겨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황제에 오른 귀재였다.

그러나 그는 전쟁 밖에 모르는 무식한 군인이 아니라 학문과 기술개발 또 역사와 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진 지성을 갖춘 군인이었다. 가장 빛나는 문화적인 업적으로는 「나폴레옹 법전」을 편찬한 학사원을 설립하고 교육을 개혁시킨 제국대학 및 사범대학과 특수전문대학 등을 설립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을 정도였다.

그리하여 그는 독서광으로도 유명하다. 전쟁에 출전 할 때도 언제나 책 담당 전속 부하에게 500권의 책을 실은 이동도서관을 끌고 다니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때로는 말 위에서도 책을 읽었다한다. 오죽하면 전쟁 중에도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7번이나 읽었겠는가. 그리하여 괴테는 나폴레옹의 뛰어난 학식과 인격에 감탄했다.

어느 저술가는 「모든 사회에서 한 인간의 생애가 재능에 따라 결정되어야한다는 신조를 가장 훌륭하게 입증해준 나폴레옹은 출신보다 능력을 인정받는 사회건설에 역점을 두었다. 프랑스 혁명 중 공화정과 평등을 구현하는데 특별히 더 역점을 두었다. 그는 정치 파벌 종교분쟁 유혈투쟁을 종식시키고 화해와 평등으로 미래를 향한 역동적 제국을 추진했다」고 ㅤㅆㅓㅅ다.

나는 파리 여행을 하면서 베르사유궁전, 루브르박물관, 에펠탑, 몽마르트언덕, 세느강의 뱃놀이, 반고호의 그림이 소장된 오르세미술관 등을 모두 관람했으나 나폴레옹기념관만은 공교롭게도 그때 하필 수리 중이어서 관람하지 못했다.

나폴레옹은 일생을 걸쳐 많은 실책도 남겼고 여성 관계로 명예가 훼손되고 러시아 원정의 실패로 엄청난 생명을 죽음으로 떨어뜨리고 워터루 최후 전투의 참패로 몰락을 자초했으나 스스로의 행동으로 문화, 정신, 제도 들을 한 단계 높여 역사에 자신을 우뚝 세웠다. 그는 1769년 8월15일 작은 섬 코르시카에서 태어나고 1821년 5월5일 센터헤르나라는 영국령 아프리카 섬에서 포로 신세로 죽음을 맞으면서 마지막 명언을 남겼다.

「내 인생의 과오나 실패는 모두 나 자신이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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