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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우

시인, 충북대 국문과 교수

"외국에서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기 위해서 몇 시간씩 지루하고 황량한 길을 가야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가는 내내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지요." 내가 아는 아마추어 사진작가가 한 말이다. 외국에 몇 번 나갔다 온 사람들은 '어디 갔더니 경치가 정말 대단하더라, 우리나라 산은 어린애 장난같이 느껴지더라'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지만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가장 아름답다고 말한다. 나는 이 말에 반만 동의한다. 우리나라의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자연이 제대로 가꾸어지지 않았다.

나는 우리나라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곳을 제대로 가보지 못했다. 가까이 있는 곳도 제대로 가보지 못한 주제에 아름다운 경치를 보러 굳이 외국에까지 나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 외국여행을 거의 하지 않았다. 사실 돈도 없고. 내가 외국에 나간 것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그 중 하나가 알프스 여행이다. 알프스에는 두 주 정도 있었는데, 나는 거기서 자연을 가꾼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있었다.

우리 아버지가 식솔들을 이끌고 강원도로 들어갔다가 강원도의 매서운 맛을 견디다 못해 사년 만에 돌아와서 자리를 잡은 곳이 상도동 산동네였다. 집을 지을 동안 세 들어 살 집으로 올라가는데 우리 형이 근처에 있는 집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아부지, 여기도 집 많다. 우리 여기서 살자." 이 말을 들은 우리 아버지 왈, "아들아, 집은 높은 곳에 있어야 하는 법이다. 전망도 좋고 바람이 시원하고, 집까지 올라가는 동안 운동도 되고 얼마나 좋으냐. 그래서 외국에서는 높은 데 있는 집일수록 값이 더 비싸단다." 형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버지가 이끄는 대로 산동네를 힘겹게 기어 올라가야했다.

알프스에서는 아버지 말대로 높은 데 있는 집일수록 더 비쌀 것 같았는데, 그것은 도로가 잘 닦여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살던 상도동 산동네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무허가 흙벽돌집과 판잣집이 빼곡히 들어차 마을이 포화상태가 된 뒤로는 우편배달부도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할 정도로 길이 엉망이지 않았던가. 알프스에는 차도만 잘 닦인 것이 아니었다. 걸어서 산을 오르는 사람을 위해 길이 따로 놓여 있었고 유모차나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해발 3000미터 높이의 만년설로 뒤덮인 봉우리에 오른 적이 있는데 그곳에는 나처럼 케이블카를 타고 온 사람도 있었고, 암벽을 타고 올라온 사람, 그리고 걷거나 휠체어를 타고 온 사람도 있었다. 지리산 노고단에서와는 달리 차를 타고 온 사람이 없다는 것도 부러웠다.

알프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자전거로 서유럽 어디든지 갈 수 있었고 내가 자전거로 달린 길은 전부 흙길이었다. 흙길보다 더 좋은 자전거 길은 없다! 관리만 잘 된다면. 비엔나 근교에는 말을 타고 가는 길도 있었다. 길에는 풀이 적당히 자라있었다. 이런 길이라면 말 잔등에 올라타고 가도 말에게 미안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길에서 나는 우리 길을 생각했다. 초가집도 없애는 것이 아니었고 마을길도 넓히지 말았어야 했다. 초가집에 살고 싶은 사람은 초가집에 살고, 문화주택에 살고 싶은 사람은 문화주택을 짓고 살면 되는 거였다. 넓은 길이 필요하면 새로 길을 놓았어야 했다. 사람들의 발로 다져진 수백 년 된 마을길이 아스팔트 아래 한번 묻혀버리면 다시 살릴 수 없다는 것을 그 때는 왜 몰랐을까.

얼마 전에 강원도 인제로 휴가를 갔다. 산이 높고 숲은 울창했다. 넓은 계곡에 흐르는 물은 옥빛이었다. 자연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계곡을 따라 걸으며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은데, 길은 차도뿐이었다. 숙소에서 편안히 쉬고 싶었지만 우리가 묵었던 펜션은 목조주택처럼 꾸며진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알프스에서 숙소를 구하러 산 위에 있는 찜머를 이곳저곳 둘러볼 때 자연과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통나무집들을 보며 아이들까지 탄성을 지르던 기억이 난다. 알프스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며 주둥이가 한 뼘이나 나와 있던 아이들이 우리가 며칠을 묵었던 찜머에서 하룻밤만 더 자고 가자며 애원하던 기억이 난다. 휴양지에 있는 펜션이라면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뒤돌아보고 싶지 않게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게 아닌가.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자연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제대로 가꾸어 놓기까지 한다면 다른 나라 휴양지는 어떻게 되겠는가? 혼자만 잘 살면 재미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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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