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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우

시인, 충북대 국문과 교수

산자락에 맞닿아 있으면서 개울을 끼고 있는 집,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첫 손가락에 꼽는 집이다. 그 집은 산 밑은 아니었지만 개울 너머가 산이다. 뼈대와 서까래는 소나무 원목으로, 벽은 황토벽돌로 쌓은 아담한 집. 붉은 기와는 황토벽과 잘 어울렸고 키 큰 산벚나무 한 그루가 개울 건너로 가지를 드리워 지붕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집주인이 건강이 안 좋아서 물 좋고 공기 좋고 경치 좋은 곳에 황토 집을 지어 살려고 했는데 얼마 살지도 못하고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고 한다. 혼자서는 외로워서 살 수 없게 된 부인이 집을 헐값에 내놓았다고 한다. 부동산 중계업자의 말을 정리하면 이 집은 좋은 터에 제대로 지은 건강 주택일 뿐 아니라 시세에 비해 턱없이 싼 좋은 조건의 집이다. 집 뒤 감자밭에서 감자를 캐는 동네 사람들은 어제도 사람들이 보고 갔다며 빨리 사지 않으면 다른 사람 차지가 될 거라고 했다.

집이 마음에 들어서 다음날 다시 보러 갔는데 중계업자가 건축업자를 데리고 왔다. 집을 지은 사람에게 직접 집의 장단점을 들어야만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없다고 했다. 자기는 수수료 몇 푼 받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집 한 채 소개해주고 두고두고 욕먹기는 싫다고 했다. 건축업자는 집 구석구석을 안내하며 설명해주다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알아둬야 한다며 이런 말을 했다. "일 년에 한 번 정화조를 퍼내야 하는데 정화조 푸는 사람을 불러서 펐다고 하고 확인서를 떼서 관청에 제출하면 됩니다. 정화조 푸는 사람은 일 안 하고 돈을 받으니 군말 없이 해줄 겁니다." 무슨 소린지 몰라서 어리둥절해 하는 내게 이렇게 덧붙였다. "이 집 정화조는 증축한 부엌자리 밑에 묻혀서 퍼낼 수가 없는데, 퍼내지 않아도 문제는 없습니다." "증축할 거면 처음부터 집을 넓게 짓지 그랬어요?" 내가 이렇게 묻자 건축업자는 '이런 순진한 양반을 봤나' 하는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건폐율에 맞춰야 해서 처음부터 집을 넓게 지을 수 없었지요." "이 집 대지 평수가 삼백 평이라던데 아닌가요?"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면적은 그 정도지만 등기평수는 백 평 남짓이고 나머지는 접도구역입니다." 이집 정화조를 푸려면 영화에 나오는 은행털이처럼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어떤 특수 장비를 동원한다해도 몸을 더럽히지 않고는 임무를 완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날 새롭게 안 내용을 토대로 이 집의 역사를 정리하면 이렇다. 몇 년 전에 건축업자는 자기 소유의 논을 메워서 대지로 형질 변경을 했고 부동산 업자는 이 땅을 지금의 집주인에게 팔아줬다. 원주인인 건축업자가 건축을 맡았는데 대지가 좁아서 개울을 따라 옹벽을 쳐야 했다. 옹벽이 굳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바람에 한 두 달이면 지을 것을 일 년 가까이 끌었다. 공사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으니 전원생활을 하면서 병을 고쳐보려 했다가 오히려 걱정거리만 떠 않은 집주인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관정을 해도 물이 안 나와 논물을 대던 계곡 물을 임시로 사용했지만 먹는 물은 생수를 사 먹어야 했다. 집은 겉만 번드르르 하고 안 보이는 곳은 콘크리트로 발라놓아서 무늬만 황토집이었다. 속이 상한 주인은 건축업자에게 돈이 없다며 잔금 지급을 미루던 차에 그만 세상을 떠버렸다. 혼자가 된 부인은 집을 팔아 본전이라도 건지려고 했지만 그렇게 비싼 가격에 코딱지만 한 집을 사겠다고 달려드는 멍청이는 없었다. 건축업자로부터 빚 독촉을 받을 때마다 집주인은 천만 원씩 가격을 내려서 처음 가격의 2/3까지 오게 된 것이다.

불법과 편법을 밥 먹듯 하는 건축업자, 하자 많은 집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려는 집주인, 손님을 속여 수수료만 챙기려는 중계업자, 이 환상의 트리오가 연출하는 사기극에 홀랑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그들의 연극은 과장이 심한 것이 문제였다. 원칙에서 너무 멀리 있었다. 마치 우리 사회의 교육 문제 같다. 교육 사업을 해야 하는 사학이 영리를 추구하고, 교육 사업을 지원해야 하는 정부는 교육기관을 관리하려 들고, 교육을 받아야 하는 교육 주체는 자격증에만 관심이 있으니 백약이 무효다. 원칙을 지키는 것 말고는 수가 없다. 그 집터는 산벚나무 꽃잎이 논물에 떠다니는 개울 옆 논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 언제나 욕심이 화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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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