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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우

시인·충북대 국문과 교수

명절날이나 잔칫날처럼 특별한 날이면 우리 사남매는 이모네 집에 가고 싶어 했다. 도림동 주택단지에 있던 이모네 집에 가면 맛있는 음식을 배가 터지게 먹을 수 있었다. 방금 해서 사기 밥그릇에 퍼 담은 흰쌀밥에서는 수돗물 냄새가 났는데 우리는 그것마저 맛있는 밥 냄새로 여겼다. 불고기와 잡채, 갈비찜 같은 요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이모네 집에서였다. 값비싼 식재료에 양념을 양껏 넣어서 강렬한 맛을 내는 이모의 요리는 우리집에서 먹던 음식과는 차원이 다른 환상적인 맛이었다. 엄마는 우리 사남매 가운데 두 명 이상은 데리고 가지 않았으므로 이모네 집에 가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엄마를 따라 이모네 집에 갔다 온 행운의 주인공인 누나들이 잔치 음식 이야기를 하는 내내 형과 나는 침만 꼴깍꼴깍 삼킨 적도 있다.

상도동 산동네에서 흙벽돌집에 살았던 우리는 김치를 주식으로 삼았고 가물에 콩 나듯 어묵 조림이나 김구이 같은 특식을 먹었다. 이런 날이면 반찬욕심을 부리던 형으로 인해서 밥상을 둘러싸고 전투를 벌이곤 했다. 아버지가 가져다주는 쥐꼬리만 한 공무원 월급으로는 아버지 생일상에도 고기 한 점 올릴 수 없었다. 대단한 능력을 지닌 우리 아버지를 남편으로 둔 덕분에 어머니는 당신의 솜씨를 제대로 발휘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우리 사남매는 절대미각까지는 아니어도 미각이 무척이나 예민했는데, 이모보다 음식 솜씨가 뛰어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하는 것조차 불경스럽게 여겼다.

우리가 살던 산동네가 신흥 주택지로 개발되면서 번듯한 택지를 불하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버지는 이 땅을 팔아 평생을 한량으로 살아온 외삼촌 손에 몽땅 쥐어줬다. 당신이 투자한 자금이 몇 달 내로 몇 배가 되어 돌아올 거라 철석같이 믿었던 아버지는 그로부터 몇 달이 채 가기도 전에 두 달 치 월급을 손에 들고 여섯 식구를 비바람으로부터 막아줄 수만 있다면 어떤 집이라도 좋다는 겸손한 자세로 서울 변두리를 헤매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신정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곳에서 어머니의 음식솜씨가 화려하게 꽃을 피우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아버지가 허황된 욕심을 부리다가 식구들을 길거리로 나앉게 만들 뻔했던 것이 나쁜 결과만을 낳은 것은 아니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완벽한 맛이 있다면 어릴 적 어머니가 해 준 음식 맛이 바로 그것이어서 세상에는 어머니의 수만큼 많은 완벽한 맛이 있다고 한다. 멋진 말이지만 애석하게도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솜씨 좋은 우리 어머니도 가난에 치어 살았을 때는 이렇다 할 음식을 만들지 못했었다. 따라서 앞의 말은 이렇게 수정을 해야 할 것이다. 완벽한 맛이 있다면 어릴 적 솜씨 좋은 어머니가 제대로 해 준 음식 맛이다.

이사한 집에서 어머니는 메주를 직접 쒀서 된장을 담그셨고 아버지는 마당에 우물을 팠으며 텃밭을 일구셨다. 장독대와 우물과 텃밭 중 하나라도 빠졌더라면 내가 지금껏 맛보았던 수 많은 음식 가운데 가장 완벽한 맛으로 기억하는 이것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퇴근하실 시간에 맞춰서 어머니는 저녁상을 차리시며 형과 나에게 고추와 호박을 따오라 하시곤 했다. 우리는 앞마당 텃밭에서 고추를 따고 밭두렁으로 가서 커다란 호박잎을 대나무 작대기로 들춰가며 애호박을 찾아냈었다.

된장찌개는 된장의 짠 맛과 멸치의 비린 맛, 고추의 매운 맛, 애호박의 단 맛 등이 어우러져있다. 그래서 짜지도 비리지도 맵지도 달지도 않은, 모든 맛이 중화된 듯한 오묘한 맛을 낸다. 우리가 먹는 것 가운데 가장 완벽한 맛을 지닌 것은 물이다. 물은 어떤 맛도 나지 않지만 그 무엇보다 맛있다. 어머니가 끓여주던 된장찌개는 찌개를 끓일 때 맨 처음 넣은 우물물을 닮았다. 그 완벽한 맛을 닮았다.

여러 종류의 맛이 조화를 이루어 완벽한 맛을 내듯이 완벽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뛰어난 자질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흔히들 어릴 적 우리 이모가 한 음식처럼 강렬한 맛을 내는 사람을 개성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 그런데 진정한 개성은 한 사람이 지니는 여러 가지 미덕이 조화를 이루어야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조화로운 사람, 어머니가 끓여주셨던 된장찌개만큼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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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