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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우

시인, 충북대 국문과 교수

진로 상담을 해주려고 지도학생들을 연구실로 불렀는데 한 학생의 얼굴이 예전과 달라보였다. 농담으로 "지영아, 얼굴에 얼마 들였니·"하고 물으니 그 학생은 아무 말도 않고 눈만 껌벅이는 것이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친구들까지 그 친구 눈치만 보게 되는 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재빨리 화제를 돌려서 간신히 사태는 수습되었지만 그 썰렁했던 분위기라니. 면담을 하면서 그 학생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쌍꺼풀 수술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성형수술이 대세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렇게나 내 가까이 와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너는 얼굴 안 고쳐도 예쁜데 돈 들여가면서 뭐 하러 했니"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내가 이런 말을 입 밖에 내어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간섭한다면 그 학생으로부터 '다른 사람한테 예뻐 보이려고 한 게 아닌데요. 내가 보기에 좋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이런 식의 응징을 당한다 해도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부기가 채 가라앉지 않은 그 학생의 눈두덩을 보고 있으니 일 년 전 몇몇 시인들과 중국에 여행 갔을 때 만났던 한족 아가씨가 떠올랐다.

우리 일행은 가이드의 손에 이끌려 라텍스 공장을 시작으로 진주를 전문으로 하는 보석상점과 비단 이불 · 비단옷 등을 파는 비단상점을 거쳐서 마침내 보이차 상점에까지 오게 되었다. 작고 호리호리한 몸매에 단아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얼굴. 그녀는 보이차 상점에서 차를 소개하고 구매를 권유하는 일을 하는 직원이었다. 한국에서 유학한 친구에게서 한국말을 배웠다고 하는데, 완벽하지 않은 한국어로도 보이차에 대한 설명을 얼마나 똑 부러지게 하는지 그녀에게 설명을 듣던 우리 일행이 전부 그녀에게 매료될 정도였다.

나는 그녀 덕분에 상품을 설명하는 것이 한 편의 연극처럼 아름답고 감동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 무척이나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것은 그녀의 표정이었다. 그녀는 한시도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도 당당하고 의욕에 넘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거쳐 왔던 상점에서 만난 판매원들의 생기 없는 표정과 대비가 되어 그녀의 표정은 더욱 빛이 났다. 어떤 표정은 아름다운 얼굴이나 균형 잡힌 몸매보다 더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다음 학기부터는 표정관리도 신경을 써서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는 강의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도, 그 결심을 실행에 옮긴 것도 그녀 덕분이다.

나는 수업을 할 때 애정을 가지고 학생들을 대하려 노력했고 학생들이 내게서 친근함을 느낄 수 있도록 신경을 써왔다. 그래서 수업을 할 때 내가 화난 표정을 짓거나 학생을 무시하는 표정을 짓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기분이 언짢은 일이 있었는데도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 하거나 일부러 표정을 밝게 해서 학생들이 기분 좋게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라. 교수가 화난 얼굴로 강의실에 들어왔는데 마음 편히 강의를 들을 수 있는 학생이 얼마나 되며 교수가 수심에 가득 찬 얼굴로 강의를 하는데 미소를 지으면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학생은 또 얼마나 되겠는가. 교수가 어떤 표정을 짓느냐에 따라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내면의 표정 또한 달라지므로 가르치는 사람의 표정은 공적인 성격을 띤다.

중국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는 언짢은 일이 있어도 학생들 앞에서만큼은 미소를 지으려 했다. 물론 배우들처럼 자기가 원하는 표정을 능수능란하게 짓지는 못했을 것이다. 내가 어색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해도 언짢은 표정을 지었을 때보다 학생들이 느끼는 심적인 부담은 훨씬 줄어들었을 거라 생각하며 나를 위로한다.

자기 얼굴이나 몸매를 아름답게 가꾸는 것은 자기 만족을 위해서도 그렇고 남들의 시선을 배려할 때도 그렇고 무척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만의 매력적인 표정을 갖는 것이 아닐까. 표정을 가꾸는 것은 얼굴이나 몸매를 가꾸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다.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자기가 살아온 삶이 얼굴을 바꾸고, 인격이 표정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나도 내 얼굴을 바꾸고 싶다. 친숙함과 현명함이 느껴지는 얼굴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얼굴을 갖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 성숙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지금보다 더 겸손한 태도로 나의 부족한 점을 돌아보고 값진 삶을 살기 위해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 하리라. 몇 년이 지난 뒤 길에서 우연히 지영이를 만났을 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어머, 선생님~ 얼굴에 도대체 얼마를 들이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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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