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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수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외솔회 회장

우리나라를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미 원시시대부터 우리는 언어에 높임법이 발달하였다. 이른바 '상대 높임, 주체 높임, 객체 높임'으로 나누어지는 높임법은, 어떤 언어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하며, 체계적이다. 이것은 심지어 인간에 한한 것이 아니라, 해나 달, 바위와 나무와 같은 비인간적인 대상에게도 적용하는 것을 보면, 한민족은 남달리 자연에 대한 경외심도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필자는 이러한 비인간적인 요소에 대한 경외심이 발전하여, 인간에게도 미쳤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품을 지닌 민족에게 주자학과 같은 예절을 중시하는 학문이 들어와, 더욱 그 강도가 높아졌을 것이다. 삼강오륜으로 요약되는 가르침은, 마치 우리의 피와 살과 같이 되어 굳어졌을 것이다. 그러니 임금을 위해서는 삼족이 멸한다 해도 충성을 바쳐야 하고, 조상을 끔찍이 모셔야 복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필자가 알기로는 각 성(姓)마다 시조부터 부모님까지 빼놓지 않고 제사를 올리는 민족은 우리밖에 없다. 정말 대단한 효도의 징표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 옛사람들이 지켜왔던 그런 예절이 오늘날에도 다 지켜지느냐 하는 데에는 상당히 회의적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이 나이 많은 분들에게 공경을 다하는가. 모든 젊은이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나, 일부는 노인네가 거추장스럽고 망령이나 부리는 부류로 치부하지는 않는가. 스승 알기를 하늘같이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스승에게 대들거나 욕하는 것도 모자라 폭력을 쓰고, 자기 자식을 꾸짖었다고 학교에 찾아가서 선생님에게 행패를 부리거나, 폭언을 예사로 하지는 않는가. 친구 간에 신의는 얼마나 지키는가. 이득이 생기는 일이 있으면, 우정을 헌신짝처럼 버리거나, 뒤에서 험담을 늘어놓기를 밥 먹듯이 하지는 않는가. 남녀 간에는 바른 태도로 임하는가. 상대를 가벼이 여기고, 만나고 헤어짐을 무 베듯이 하지는 않나.

이런 의문에 선뜻 긍정적인 답안을 내놓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유독 오월에는 특별한 날들이 많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그런데 이런 날들에만 대상자들에게 특별한 대우를 한다는 것이 이상하다. 상대에게 잘 해주는 일은 일 년 내내 해야 하는 것인데, 혹시 그렇게 하지 못하니, 그 날만이라도 잘 해보자는 이야기인가. 어떤 면에서는 '그런 날까지도 상대방들에게 잘 못하면 언제 하겠느냐' 라고 하면, 할 말이 없기는 하다. 그런데 그 날만 잘 하고, 다른 날들은 안 그런다면, 그건 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앞에서도 말했듯이 구태의연한 예절은 좀 바꿀 때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여론도 있다. 조상 대대로 시제를 지내는 것은 물론, 부모는 물론 사대조까지 기제사와 명절의 차례를 합쳐서 한 분에 세 번씩이나 제사를 모셔야 하는 일이 쉬운가 하는 점이다. 예컨대 기제사를 부부 양위분과 역대 조상을 합쳐서 한 번에 지내면 어떠냐 하는 이야기다. 예전에야 한 가족이나 친척들이 같은 동네에 살거나 가까이 살았으니, 모여서 제사 지내는 일이 쉬웠겠지만, 요즘처럼 전국 곳곳에서 흩어져 산다면, 제사 때문에 모인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뭔가 바꾸기는 바꾸어야 한다.

남녀 간의 문제도 그렇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는 혼사가 자기 과시와 부를 자랑하는 의식으로 바뀌었다. 혼수로 몇 천만 원, 혹은 몇 억 원을 쓰고, 으리으리한 호텔에서 한 끼에 십 여 만원이나 하는 음식으로 대접을 하는데, 돈 많은 사람이야 그렇다 치고, 별로 가진 것도 없는 집안이 그러는 것은 영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런 돈을 아껴서 신혼부부의 살림에 보태 쓰는 것이 좋을 텐데, 그렇게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것이 이상하다. 게다가 웬 꽃은 그렇게 많이 가져다 놓는가. 그것도 꼭 혼인하는 당사자들을 축하해서가 아니라, 보내는 이의 영예를 위해서 그런다면, 그 꽃은 좋은 뜻이 아니다. 게다가 혼사가 끝나면, 그 화환들은 금방 사라져서 어딘가로 가는 모양인데, 그런 허례허식이 왜 필요한가. 그렇게 호화찬란하게 예식을 치룬 이들이 이혼할 때는 손바닥을 뒤집듯이 하니, 그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나라는 예의지국이다. 전철에서 연로한 분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학생도 있고, 어른 앞에서 담배를 끄는 젊은이도 있다. 명절 때면 그 험난한 교통 사정에도 마다 하지 않고, 고향을 찾아가 성묘하고, 제사지내고, 부모님과 이웃들에게 인사 드리는 덕목을 잘 지킨다. 나라를 수호하다가 유명을 달리 한 군인들에게 명복을 빌어주려고 구름 같이 몰려가 조문을 하고, 너도 나도 성금을 내는 민족이 우리다. 이런 품성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 나라의 미래는 정말 밝다고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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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