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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10.18 15:22:47
  • 최종수정2020.10.18 15:22:47

송용섭

충청북도농업기술원장·교육학박사

많은 상처를 남기고 간 지난여름, 긴 장마와 폭우, 태풍 뒤에 맞은 가을이기에 더없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저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이 그 어느 때 보다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에게 지난 시간의 아픔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을을 뜻하는 한자 추(秋)를 보면 벼(禾)가 불(火)타는 것을 의미한다. 농촌 들녘에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모습이 마치 불에 타는 듯하여 붙여진 것으로서 가을 풍경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벼, 수수, 콩 등 곡식뿐만 아니라 만산홍엽(滿山紅葉)으로 가을의 정취를 더해 가고 있다.

조선 시대 4대 문장가의 한 분인 상촌(象村) 신흠(申欽)은 인간삼락(人間三樂)을 이렇게 읊었다. "문을 닫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것, 문을 열어 마음에 맞는 손님을 맞이하는 것, 문을 나서 마음에 드는 경치를 찾아가는 것, 이것이 인간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閉門閱會心書 開門迎會心客 出門尋會心境 此乃人間三樂]." 문고리를 사이에 두고서 닫고, 열고, 나서는 것으로 삼락을 묘사한 뛰어난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이 가을에 이런 육언절구(六言絶句)의 시가 마음에 더욱 와닿는 것은 독서와 벗, 경치를 즐기기에 지금이 더없이 좋은 계절이기 때문이다. 몇 해 전 황금 들녘이 바라보이는 산의 정상에 올라 따스한 가을 햇살 아래 배낭을 베개 삼고 드러누워 독서 삼매경에 빠졌던 추억이 문득 떠오른다. 그때 느꼈던 행복의 여운은 여전히 내 가슴에 머물러있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가까운 벗에게 건넨 시에서 봉화군의 청량산(淸凉山) 봉우리 사이를 걸으며 이렇게 예찬했다. "산봉우리 봉긋봉긋 물소리 졸졸, 새벽 여명 걷히고 해가 솟아오르네. 강가에서 임을 기다리나 오지 않아, 내 먼저 고삐 잡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네[烟巒簇簇水溶溶 曙色初分日欲紅 溪上待君君不至 擧鞭先入畵圖中]."명산(名山)의 경치를 즐기러 산중으로 접어드는 것을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고 표현하였다. 이보다 더 실감 나는 언어 구사가 있을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같으면 온 산이 붉게 물드는 풍광(風光) 자체가 한 폭의 그림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멋진 풍경화가 어디 있겠는가? 화가들이 자연을 화폭에 옮겨 담는 것은 그 경치를 언제나 가까이서 즐겨 볼 수 있도록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행위일 것이다.

단풍은 일반적으로 최저기온이 5℃ 아래로 떨어지면서 시작되는데 최근 지구온난화로 인해 첫 단풍과 단풍 절정 시기도 점차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국립수목원이 세계 처음으로 인공지능 시뮬레이션을 적용해 만든 올가을 단풍지도에 따르면 설악산과 속리산은 각각 10월 17일과 10월 21일에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하여 많은 국민들이 감염에 대한 불안과 무기력, 스트레스와 같은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고 있다. 충북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운영하는 정신건강 상담 전화가 지난 9월까지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32% 증가한 것에서도 그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정신건강 치유를 위한 방편으로 밀폐, 밀접, 밀집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자연 속에서 우리도 인생삼락을 즐기는 방식을 바꾸어보는 것은 어떨까?

옛 선인들이 풍류를 즐겼던 삶의 방식을 한 번 재현해 보자. 마음에 드는 책 한 권 지니고 벗과 함께 짬을 내어 가까운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보자. 삼락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이번 주말은 넝쿨처럼 얽혀있는 세상만사 제치어 두고 마음에 드는 그림 속을 거닐며 화보(畵步)해 보자. 유난히 맑고 눈부신 가을 햇살 속에서 평화와 풍요로움을 만끽하기에 이 가을은 너무 짧다고 느껴질 날이 그리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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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