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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태

청주성모병원 종합검진센터

요즘 딸 바보라는 말이 유행이라고 한다. 본래 의미인 속 깊고 은근한 부성애 대신 좀 더 적극적으로 겉을 드러내 보이는 부성애를 뜻한다. 나에겐 아들, 딸 남매가 있다. 아들은 비교적 별 무리 없이 엄마의 전폭적인 신뢰 아래 자라 현재 유수한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

반면 딸은 어려서는 못나서 한때는 곰곰이 견적을 빼 본 적도 있었다. 공부도 뒷전이어서 바둥바둥 억지로 끈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고 아내가 몇 차례 학교에 불려간 적도 있었다.

그런데 마음 씀씀이와 감성적인 면은 날 닮아 아내의 옹호를 받는 아들 보단 나에겐 딸애가 항상 애잔한 느낌으로 와 닿곤 하였다. 모친께서 "걱정마라 애들은 커가면서 열 번도 더 변한다" 하셨는데 과연 대학생이 되더니 키도 늘씬해 지고 얼굴도 집안 여인네 중 최고의 미모를 자랑하게 되었다.

영어 complex가 있어 혼자 걱정을 많이한다 싶더니 유학을 간다고 하였다. 내 딴에 한국 학생이 가장 적을 것으로 생각되는 Island를 추천해서 그 곳에 가게 되었다. 도착 후 첫 전화가 "아빠, 여기도 한국애들 많아요." 였다. 유학 결과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자신감이었다.

다행히 외국계 consulting회사에 들어갔고, 바쁘다 또 힘들다 하면서도 직장 band의 vocalist로도 활동하고 있다. 연애는 C학점이나 줄까 할 만큼 학생 때 보여준 것을 답습하더니 소개팅으로 만난 지금 사위와 밀고 당기기를 제법 하였다.

그 때 내가 주례사에서 늘 하는 부부싸움 오계명을 일러준 적이 있다. 일은 일단 싸워라이다. 괜히 작은 싸움거리를 묵혀두다간 큰 싸움이 되어 사생결단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이기려 하지마라 이다. 지는 것이 결국 이기게 된다. 삼은 삼가할 말은 삼가하라는 것이다. 서로의 집안 식구 들의 험담은 특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는 사과는 먼저 하라이다. 오는 오분 안에 끝내라이다. 긴 부부 간의 행로에서 싸움은 쉼표에 불과한 것이지 마침표가 되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튼 우여 곡절 끝에 지난 3월 16일에 결혼식이 잡혔고 양가가 천주교 집안이라 성당에서 식을 올리기로 하였다. 그런데 결혼식 한달 전쯤 딸애가 축가를 불러 달라는 게 아닌가.

늦은 나이에 시작한 성악 공부가 1년 여 되어 한참 열이 오를 때였고, band vocalist인 딸이 인정해 주고 또 딸애의 마음이 가슴에 전해와 뿌듯하였다. 겉으론 "아빤 울렁증도 있고 네 결혼식때 노래를 부르면 울컥 할 것 같은데..." 하고 짐짓 발을 뺐다. 딸애는 "아빤 잘 할 거예요. 꼭 해주세요." 하였다. 선생님이 골라 준 곡으로 맹훈련에 들어 갔고 울컥하지 않게 mental training도 하였다.

결혼 보름 전 함이 들어왔다. 정말 우리 딸이 시집을 가는구나 하고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처음인지라 절 받은 후 머쓱해져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장인이 한 말씀 하셔야지요" 하였다. 식탁보 이야기와 麗澤相注란 사자성어를 들어 말해 줬다. 식탁보는 혼자 펼 칠 경우에는 아무리 잘해도 틀어질 수 밖에 없는데 둘이하면 반듯하게 펼칠 수 있다는 의미이고, 이택상주는 두 연못이 맞닿아 있으면 서로 물을 대 주어 어느 한 쪽이 마르는 일이 없으니 서로 떨어짐이 없이 서로의 생각과 사랑을 주고 받아라는 의미였다.

결혼식 날은 주님의 은총으로 볕이 따사롭고 바람도 없었다. 네분 신부님들의 집전 하에 신부입장도 잘하였고 혼례미사도 경건하게 잘 진행되나 했는데 막상 성혼선언문을 읽어야 할 즈음에 딸애가 울음이 북받혀 읽지 못하는게 아닌가. 순간 나도 눈물이 나고야 말았고 급기야는 "읽어야 시집갈거 아냐." 하고 말하기 조차 하였다. 축가 때 감정 조절에 문제가 올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불현 듯 스쳐 갔다.

축가 순서가 되어 2층 성가대석으로 조용히 올라갔다. 갑자기 조용해 지면서 모두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고, 가슴은 방망이질 쳤다. 진정해지기 위해 간단한 인사말을 하였다.

"네분 신부님들의 집전 하에 혼례미사가 조용하고 경건하게 치뤄져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동안 많은 고생을 한 아내에게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나타내고 싶습니다. 아내는 피부에 투자를 했어요.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뒷탈이 있을 것 같아 목에 투자를 했습니다. 축가를 부르겠습니다." 순간 다들 와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럭저럭 숙연한 분위기 속에 축가가 잘되가고 있는데 끝날 무렵 제대 앞에서 눈물을 훔치는 딸애의 모습이 갑자기 줌인이 되듯 눈에 한가득 들어 왔다. "이 축가가 끝나면 내 딸이 아빠를 떠나는 구나"하는 생각에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오늘 너희를 축복하-울컥-노라." 간신히 이어서 "내가 너를 축복하-울컥 --" 식장은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다 한다.

아들이 나중에 "아버지, 축가도 잘 불렀지만 마지막에 목이 매어 다 부르지 못한 것이 백미였어요" 하였다. 아들아, 못 부른 마지막 소절에 딸 바보 아빠의 외침이 있었단다. 부디 화목하고 행복하게 잘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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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