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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에 핀 진달래' 이옥선 할머니

"펄럭이는 태극기 보며 생지옥 공포 떨쳐냈다"

  • 웹출고시간2011.08.11 19:39:3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편집자주

광복 66주년을 맞는 이옥선(85) 할머니의 마음은 여전히 편치 않다. 일본은 지금도 '독도'를 '다케시마'로 부르며 그들의 영토라 떼쓰고 있고, 조선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힘줘 말한다. 치욕의 일본 식민지 시절을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이다.
'하얀 저고리/검정치마/조선 땅의 딸이/오늘 베옷입고 길 떠나 하늘의 품에 안긴다.'

세상을 떠난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기린 시 '또 진달래지다'의 일부다.

과거 상처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바라던 수많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한 분, 두 분 생을 마감하면서 제대로 피지도 못하고 떨어져버린 진달래꽃에 비유한 것이다. 올해만 해도 져버린 진달래꽃은 모두 9송이.

현재 생존해있는 할머니들은 70분(우리나라 62명, 해외 8명)밖에 되지 않는다. 충북엔 2분(영동1, 보은1)이 있다.

이 중 보은 속리산에서 홀로 살아가는 이옥선 할머니는 최근 건강상태가 악화돼 매일 병원에 다니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대구가 고향인 할머니는 1943년 일본군에 끌려가 중국에서 2년 정도 위안부 생활을 했다. 그 때 나이 16세였다. 무작정 끌려가 눈을 떠보니 주위엔 총칼을 멘 무서운 일본군들뿐이었다.

다행히 위안부 생활 도중 중국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지하로 피신했다. 지하에서 생활한지 2~4일이 지나 한국은 해방됐고 일본군들은 철수했다.

이 할머니는 UN군의 도움을 받아 신의주로 건너왔다. 신의주에서 한덩어리의 주먹밥으로 요기를 한 뒤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고향에 돌아왔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함께 끌려갔던 동네 친구는 생사를 알 수 없었고 친구 부모님은 매일같이 이 할머니 앞에서 목놓아 울었다.

죄인이 된 기분이었던 할머니는 몸과 마음의 피멍이 가시기도 전 떠날 결심을 했다. 그 때 나이 19세였다.

발바닥에 피가 날 정도로 전국을 떠돌았다. 우여곡절 끝에 속리산에 정착한 뒤 남은 여생을 보내게 됐다.

그때부터 집 앞에 태극기를 걸었다. 태극기는 유일한 힘의 원천이었다.

이 할머니는 "힘차게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면서 생지옥 같았던 위안소 공포를 떨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국이 원망스러울 법도 할 터. 하지만 할머니는 대한민국을 끔찍이 사랑한다. 젊은 인재들이 많이 나와야 나라가 강해진다며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돈을 장학금으로 내기도 했다.

20년 전부터 장사를 하며 틈틈이 모아뒀던 2천만원의 거금이었다.

할머니는 "젊은 청년들이 나 같은 불행을 겪으면 안 된다는 마음뿐이다. 젊은 인재를 육성해 국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로 광복 66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여전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본정부의 태도에 이 할머니는 그 때의 고통과 분노가 떠올라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 김경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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