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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

충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이제 곧 4월이 된다.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영국의 시인 엘리어트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읊으며 장시(長詩) '황무지'를 시작하고 있다. 그는 죽은 땅에서 라일락 꽃을 피우며, 봄비로 활기 없는 뿌리를 일깨우기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적고 있다. 황무지는 감정이 얼어붙은 현대인의 세계이고, 그 안에서 겨울처럼 죽어버린 감정들을 일깨우게 되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우리의 4월도 잔인하다. 작년부터는 4월이 되면 세월호 사건이 떠오르고, 이제는 다 잊어버린 줄 알았던, 그래서 정리된 줄 알았던 감정들이 꿈틀거리기 때문이다. 엊그제는 편의점에서 물건을 살 때, 주인이 세월호 이야기가 왜 다시 뉴스에 나오느냐며 불편해 하기도 했다. 그냥 덮어두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인 듯 했다.

무엇이 되었든 잠든 것을, 묻어 놓았던 것을, 덮어두었던 것을 다시 열어젖히면 힘이 든다. 때로는 물질적으로, 때로는 마음이 힘들다. 아마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4월이 되면 마음이 어떤 식으로든 힘들 거라는 예감이 든다. 4월을 눈앞에 두고 악명 높은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 남은 유태계 이탈리아 인 작가 프리모 레비가 떠올랐다. 그는 '극한 상황 속의 일상', 즉 '비상한 일상'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하여 그는 공격당하며 무너지고 파멸로 치달아 가는 인간성을, 또 어떻게 인간성이 살아남고 소생할 수 있는지를 낱낱이 기록하고 분석하였다.

레비에 따르면, 수용자 대부분이 택한 삶의 방식은 포기와 순응이었다. 그들 중 살아남은 이는 극소수였고 대다수는 사망했다. 레비는 이들을 '가라앉은 자'라고 불렀다. 그는 이들을 '끊임없이 교체되면서도 늘 똑같은, 침묵 속에 행진하고 힘들게 노동하는 익명의 군중/비인간'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면 살아남은 사람들을 '구조된 자'라고 불렀다. 그리고 '구조된 자'는 여러 형태의 모습을 보였다. 나치 친위대에 협조하여 살아 남은 사람들도 있었고, 동료의 먹을 것을 훔치거나 빼앗아 삶을 이어나간 자도 있었다. 물론 고결한 지조를 지키면서 버틴 사람들도 있었다. 따라서 '구조된 자'들을 무작정 비난할 수도 감쌀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호함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모호함은 판단 유보를 낳고, 끝까지 본질을 파고드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찝찝한, 아쉬운, 슬픈, 분노하는 감정을 얼어붙은 땅에 파묻고 깨우는 것을 꺼리게 만든다.

레비가 명명한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라는 용어는 세월호의 참사에 대한 기억에 정확하게 덧씌워진다. 우리도 그곳에서 '가라앉은 자'들을 보았고, '구조된 자'들을 보았다. '가라앉은 자'들은 대부분 대기하라는 방송에 순응한 사람들이었고, '구조된 자'들은 각기 달랐다.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선장이나 선원도 있었고, 끝까지 구조 활동에 힘쓰다가 마지막에 나온 이들도 있었다. 구조 시스템의 문제나, 재난 대처의 문제, 선사와 해경 및 공무원들과의 유착 문제는 젖혀 두고 생각해 보면, 중요한 것은 일방적인 지시나 정보에 무턱대고 순응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지시를 내리는 주체가 권위가 있으니까, 나보다 잘 알 테니까, 전문가니까 그저 따르면 된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보다 능동적으로 기존 관념에, 일방적인 정보 전달에 비틀어 보고, 정말 그런지를 다시 생각해 보는 일은 언제나 필요하다. 그래서 어떤 일이 마음을 흔들어 아프게 할 때, 거기서 고개를 돌리게 되면 다시 같은 일이 되풀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가슴 아픈 일을 묻어 두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정말 그래야 했는지 되묻고, 통념을 토대부터 문제시하는 데 있다. '괴물'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얼굴을 돌리지 않을 때, 비로소 사람은 괴물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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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