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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

충북대 사학과 교수

또 한 해가 시작되어 달력이 넘어갔다. 흘러가는 시간에는 굽이가 없지만, 사람들은 왜인지 곳곳에 표시를 해두고자 한다.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이기 때문인가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의미를 부여해야 그것을 되새기며 힘을 다하기 때문이다. 시작은, 또 마지막은 그 중에서도 중요하여 우선시된다. 지난 다음에도 돌이켜보고 새 힘을 내야하는 기준점이 되고, 바라보고 기운을 모으는 목표점이 되므로.

지난 연말에는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렸다. 새로 시작하는 '목요광장'의 처음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이 되어서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 문장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약한 자의 편에서 소송을 걸어 재판하고, 강한 자에게는 소환하여 변명하게 하라." 이 문장이 나온 책은 법률서나 법학서가 아니었다. 인류 최초의 문학인 '길가메쉬(Gilgamesh) 서사시'였다. 이 서사시는 기원전 2천700년경의 인물이라고 추정되는 우르크(Urk)의 전설적인 왕 길가메쉬의 모험을 다루고 있다. 오늘날 이라크 남부 지역, 그 중에서도 페르시아 만에 가까운 지대에 자리 잡고 인류 최초의 문명을 일구었던 여러 도시국가들이 있었다. 이 문명을 수메르(Sumer) 문명이라고 하고, 우르크는 그 중 가장 강력했던 곳들 중 하나이다.

멀고 위험한 삼나무 숲으로 가서 그곳의 무시무시한 숲지기 훔바바(후와와라고도 한다)를 상대로 싸우기 위한 원정에 앞서, 길가메쉬는 태양신 샤마쉬(Shamash) 앞에서 기도했다. 그리고 점치는 사람을 불러 점괘를 보았는데, 그 점괘 중에 나온 이야기가 바로 앞의 문장이었다. 길가메쉬가 원정에서 성공해 돌아올 것이고, 옥좌에 올라 사람들을 다스리게 될 터인데 그 때 필요한 조언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통치자에 대한 태양신의 충고이다. 태양은 어느 곳에나 다 같이 비치므로 고대인들은 태양신이 법을 관장하고, 올바른 통치를 보장해 준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기원전 1755년경에 만들어진 고(古) 바빌로니아 왕국의 '함무라비(Hammurabi) 법전'이 새겨진 비석에서도 함무라비 대왕이 앉아있는 태양신 앞에 엄숙한 자세로 서서 법률을 받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 법전에서 함무라비 대왕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그 때에 (두 강력한 신들인) 아누(Anu)와 엔릴(Enril)께서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시기 위해 경건하고 신을 두려워하는 통치자인 나 함무라비의 이름을 부르셨다. 이는 (태양신) 샤마쉬처럼 일어나 이 땅에 공정(公正)한 통치를 펼치게 하고, 부정한 자와 사악한 자들을 멸하여 강한 자들이 힘없는 자들을 누르지 못하게 함이다." 그리고 법전의 말미에 다시 한 번 더 강조한다. "미망인과 고아에게 정의가 실현되도록 법을 만들었으니, 불의에 의해 고통을 받은 사람들은 법에 호소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함무라비 법전을 그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동형복수법(同形復讐法)으로만 기억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법전을 만들기 위한 정신이었다. 한편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또 다른 법전도 있다. 함무라비 법전이 출현하기 600년 정도 전인 기원전 2350년경의 라가쉬(Lagash)의 왕 우르카지나(Urkagina)의 개혁법이다. 이때에는 이미 관료 조직이 비대해져 있었고, 그로 인해 가난하고 힘없는 자가 세금을 더 많이 부담하거나, 재산을 뺏기며, 불공정거래를 당하는 일이 빈번했다. 우르카지나 역시 "약한 자와 미망인을 강한 자들에게 넘겨주지 않겠노라"며 자신이 새로운 법을 반포한 이유를 명시하고 있다. 결국 통치의 핵심이란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이 한을 품지 않도록 하는 일이라는 것은 이미 4천700여년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2016년에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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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