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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1.08.28 16:13:1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이성계가 '칼'로 조선을 건국했다면, 정도전은 그 '머리'에 해당한다. 정도전을 조선 건국의 총설계사로 부르는데는 나름의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는 먼저 '조선경국전'(1394·태조3)을 지어 이성계에게 바쳤다.

조선왕조의 헌법으로 불리는 조선경국전은 국호(國號)부터 관리선발까지 국가 운영에 대한 내용을 망라적으로 담았다. 그는 또 한양 천도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등 수도 경영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숭례문 등 한양 4대문 이름도 그가 지었다.

그러나 그는 의원내각제와 성격이 비슷한 신권(臣權)정치를 추구했다. 일종의 권력분점인 셈이다. 여기에 전부터 추진해오던 요동수복에도 박차를 가했다. 이 과정에서 사병혁파가 거론됐다.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인 방원(후에 태종) 입장에서 볼 때 이는 국정을 쥐락펴락 하는 것이자, 2인자 위치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정도전은 이방원의 기습을 받고 희생됐다. 정도전은 아들을 많이 뒀다. 이들도 유탄을 피할 수 없었다. 세 아들이 살해되거나 자살했다.

'도전이 아들 4인이 있었는데, 정유(鄭游)와 정영(鄭泳)은 변고가 났다는 말을 듣고 급함을 구원하러 가다가 유병(遊兵)에게 살해되고, 정담(鄭湛)은 집에서 자기의 목을 찔러 죽었다.'-<태조실록>

여기에 등장하지 않는 또 다른 아들이 있다. 바로 정진(鄭津·1361∼1427)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살해되지는 않았으나, 조선 2인자의 아들 신분에서 전라도 수군(水軍)의 일개 병사로 신분이 엄청나게 강등됐다.

'오몽을을 목 베고 정진(鄭津)을 수군으로 내쫓았다. 간관 권숙 등이 말씀을 올리기를, "오몽을·정진 등은 남은·정도전과 함께 몰래 반역을 도모하고 서자(庶子)를 세자로 세우고자 하여 종친(宗親)을 해치려고 하다가…'-<태조실록>

조선 수군은 근무 환경이 너무 열악했기 때문에 육군과 달리 매우 천시됐다. 따라서 수군 병영에는 죄인이나 천민들이 주로 보내졌다.정진의 수병생활 9년간 계속됐다.

그러나 태종은 그를 판나주목사로 임명하는 방법으로 복권시켰다. 태종이 왜 정적의 아들인 그를 바로 복권시켰는지는 분명치 않다. 정황상 정권이 안정된 것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인 것으로 보여진다.

이후 정진은 가는 곳마다 고을을 잘 다스리는 등 조선 조정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우리고장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이때 그는 소금공납 저감, 지방 교육 등 다양한 내용을 상소한다. 특히 지방교육을 거론한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참신한 것이었다.

'충청도 관찰사 정진(鄭津)이 계하기를, "선비를 가르칠 스승은 반드시 널리 두어서 인재를 교육하여야 하는데, 지금 지군사(知郡事) 이하 각 고을에 교수관이 없어서 배우는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 유학으로 학장을 삼는다 할지라도, 학생들이 모두 가볍게 여기니, 원컨대 교수·훈도관을 두어서 학교를 일으키기를 바랍니다." 하니…<세종실록>

그가 죽자 세종대왕은 조회를 철폐하고 부의를 내렸다. 세종실록은 그의 졸기를 '정진이 임지에 가서 겸손하여 자기를 억제하고 정사에 부지런하니, 고을 사람들이 탄복하였다'라고 썼다. 아버지 정도전은 삼봉이라는 호에서 보듯 우리고장 단양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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