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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1.08.25 19:03:5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임금의 행차 때 어가(御駕) 주위에서 왕을 모시는 사람 또는 그런 행위를 호종(扈從)이라고 한다. 이때의 '扈'는 '따르다', 從은 쫓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호종이라는 표현은 이미 고려시대부터 나타난다.

'용례감찰사에서 방을 붙여 이르기를, "호종하는 신하들이 서로 돌아보고 웃고 이야기하거나 조복(조회 때 입는 옷)을 입고 걸어 다니는 것을 금지한다.…" 하였다.'-<고려사>

융복은 철릭과 주립으로 된 옛 군복으로 평시에는 무신만 입었다. 철릭은 허리에 주름이 잡히고 큰 소매가 달렸다. 당상관(정3품 이상)은 남색이고 당하관은 분홍색이다. 주립은 한자로 '朱笠'이라고 쓴다. 말 그대로 무인들이 쓰던 붉은 갓을 말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중국 국경인 의주까지 피난갔다. 여차하면 중국으로 망명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선조가 내세운 논리는 '나라를 빼앗기면 나중에 도로 찾을 수 있지만 임금이 죽으면 나라도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종전이 되자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한 86명의 신하를 1~3등급으로 나눠 공신으로 녹훈했다. 이른바 호성공신(扈聖功臣)이다.

얼마전에 성달생(成達生·1376∼1444)이라는 인물을 가볍게 소개한 적이 있다. 그는 조선 무과 수석 합격생 1호로서 무신 생활을 시작했다.

'임오년에 나라에서 처음으로 무과를 설치하였는데, 달생이 제1등으로 뽑혀 대호군에 임명되고, 나가서 흥덕진병마사가 되었다.'-<세종실록중 졸기>

그러나 그의 무신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첫 번째 불행은 경호 업무와 관련해서 찾아왔다. 상왕이 된 태종 앞에서 칼을 차고 경호한 것이 문제가 됐다.

'모화루 위에 올라 칼을 차고 시립(侍立)한 것을 임금이 보고 말하기를, "부왕(父王)이 여기 계옵신데 어찌 칼을 차고 옆에 있을 수 있느냐." 하고, 급히 재촉하여 누 아래로 내려가게 하고, 환궁하여 곧 이들을 모두 옥에 가두게 하고, 또 이를 금지하지 못하였다 하여'-<세종실록>

그는 태생적으로 물을 무서워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신이면서 배타기를 꺼려했다. 이것 때문으로도 곤욕을 치러야 했다.

'상왕이 병조에 명하여, 성달생·이사검·이덕생들을 사무에 태만한 이유로 국문하고 의금부 옥에 내려 유치하였다. "(…)달생은 3도 수군 도처치사로서 배타기를 꺼리어서, 마음대로 육지에 내려 교동에서 관량 아랑포에 이르러 역마를 타고 행하니, 위임 맡은 본의에 어그러졌는지라, 모두 국문해서 아뢰라" 하였다.'-<세종실록>

서두에 호종을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가 있다. 호종은 계속 걸어야 하기 때문에 고령의 대신이 수행하기에는 힘든 면이 있었다. 임금을 호종하다 사망한 사고가 우리고장 초정에서 일어났다.

1444년은 세종대왕이 초정약수에 거둥했던 해다. 바로 무과 장원 1호 성달생이다. 그의 나이 67세로, 어찌보면 조선시대판 경호실장다운 죽음이었다.

'그뒤 도총제·함길도병마도절제사·함길도도절제사·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1444년 안질을 치료하기 위하여 충청도 초수리(椒水里)에 행행(行幸)한 세종을 수가(隨駕)하였다가 갑자기 죽었다.'-<세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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