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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04.16 14:10:28
  • 최종수정2024.04.16 19:12:25

정초시

충북도 정책수석보좌관

칠십 줄에 들어서다보니 친구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난다. 옛날에 비하면 비교적 장수하여 호상이라고 불렀겠지만, 지금은 남성의 평균수명이 대략 83세에 이르니 조사(早死)일 것이다. 죽음을 이기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보지만, 결국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숙명의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죽음 앞에는 평등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죽음에 한 발 다가서는 것인데, 그 과정이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과 비슷해짐을 느낀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고 내 말만 하고 싶은 충동, 서열의식이 심해져 젊은 사람들의 비판을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싶어 하는 점 등과 같은 욕구를 느낄 때마다, 불행한 노년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앞선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여 좀 더 겸손하려고 애쓰지만, 본능적 욕구는 항상 이성을 거스르라고 한다.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라는 중편소설을 통해 죽음에 직면한 한 남자가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는 과정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소설의 첫 장면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에서 시작한다. 부고를 받아본 귀족 친지들은 일리치의 죽음을 애도하기 보다는, 내심 그가 차지하고 있었던 고등법원 판사자리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다. 심지어 아내마저 남편 사후 어떻게 하면 연금을 더 받을 수 있는지에만 관심을 가진다. 즉, 타인에게 있어서 일리치의 죽음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일리치에게 다가온 특수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일리치는 보통 사람들처럼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적절한 위치의 귀족여성과 결혼하고 매우 성실한 삶을 살았던 모범적인 공무원이었다. 전반적으로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던 찰나, 45세의 나이에 죽음의 그늘에 던져진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 죽음 앞에 자신이 쌓았던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한다. 아무리 죽음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오히려 죽음에 더 가까이 갈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죽음의 사자 앞에서 일리치는 이 모든 책임을 타자에게 돌리고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의사에게도 증오를 쏟아내며, 심지어 신에 대해서 분노를 뱉는다. 그러나 10대 아들의 아버지를 향한 눈물을 보면서 일리치는 연민을 느끼게 되고 심지어 허영심 많은 아내를 측은한 마음으로 돌아본다. 그리고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린다. 그러자 그렇게 자신을 괴롭혔던 통증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평온해 진다. 그리고 주인공은 "죽음이 있던 자리에 빛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톨스토이가 주인공의 직업을 지방검사에서 고속 승진하여 고등법원 판사로 설정한 것은 하나의 복선처럼 보인다. 판검사는 보통 사람들의 법적 죽음을 선고하는 자리에 있지만, 실제 죽음 앞에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리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승진하여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보다, 사랑·관용·배려 등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수용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교훈한다.

4월은 정치의 계절이었다. 정치는 근본적으로 다스린다는 의미이다. 인간의 3대 욕망, 즉 육체적 욕망, 소유욕망, 지배욕망 중 가장 강력하고 오래가는 욕망은 지배욕망이다. 육체적 건강과 아름다움, 많은 소유 등은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소멸되고 만다. 그러나 인정받고 직접 다스리고 싶은 욕망은 매우 끈질기고 강렬하지만, 욕망에만 매달릴 때 파멸의 길을 갔던 많은 사람들을 본다. 그래서 권력의 높은 사다리에 있을 때 겸손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죽음을 의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톨스토이는 말한다. 죽음은 자체로서의 의미보다 삶이라는 대척점에 있는 실존과 연결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즉, 죽음의 숙명은 현재 우리가 누리고 살아가고 있는 삶을 더욱 진지하게 살라는 경고일 것이다. 그래서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는 죽음을 앞둔 노년기에 필요한 말이라기보다 인생의 절정을 사는 사람에게 더욱 필요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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