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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6.20 17:33:56
  • 최종수정2023.06.20 17:33:56

정초시

충북도 정책수석보좌관

능력주의(meritocracy)는 과거 중세사회처럼 신분이나 계급의 세습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받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근대 자유주의 이념의 근간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자본주의 경제와 맞물리면서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가져왔다. 개인의 능력에 따른 보상이 단일의 화폐가치로 평가되면서, 선형의 서열이 형성된 것이다. 즉, 나의 능력이 화폐가치로 평가되면서 내가 속한 사회에서의 서열이 정해진다는 의미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다양성의 가치는 사라지고 오직 서열만 남을 뿐이다. 즉, 능력의 사다리에서 최상위에 오르고자 치열한 경쟁만 남을 뿐이다. 그리고 능력의 사다리는 그대로 둔 채, 누군가 부정한 방법으로 사다리를 오르려고 하는 자를 독수리의 눈으로 색출해내서 절차적 공정성이라는 이름으로 엄단한다. 과연 우리가 믿고 있는 능력의 사다리가 올바른 것인가라는 근본적 담론에 대한 논의는 사라져버렸다.

과연 능력 사다리 최고의 정점은 어디일까? 최근 가장 똑똑한 어린아이들이 가고자하는 직업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며칠 전 어느 미디어에서 우리나라 사교육의 메카라고 부르는 대치동에서 "초등 의대반"이 성황을 이룬다는 보도가 있었다. 의대를 진학하려면 늦어도 초등 4학년에는 시작해야 비로소 의과대학의 문턱에 간신히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학전문학원인 "황소학원"이 거의 필수코스처럼 되어 있는데, 여기 가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동안 대기를 해야 한다고 한다. 황소처럼 우직하고, 그리고 되새김하듯 배운 것을 반복하면서 DNA에 각인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바퀴달린 여행 가방을 끌고 학원에 가는 모습을 보면서, 10년 이상을 오직 의대를 가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해야 한다. 그래서 기필코 최고의 사다리에 오르려 한다. 그리고 대치동 건물 곳곳에 정신과 병원이 눈에 띈다. 왜 어린 아이들이 의대에 진학하려고 할까?

최근 발표된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의하면 의사들의 평균 연봉은 2억5천400만 원 수준이다. 통계청의 직종별임금통계에 의하면 가장 높은 직종인 "고위전문 관리직" 연봉은 약 1억4천200만 원 정도로 의사연봉의 약 절반에 불과하다. 공식통계이고 평균이기 때문에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의사들이 최고의 연봉을 받는 직종임은 틀림없다. 의사들이 공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높은 소득을 받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의료서비스 체계는 수요측면에서는 사회주의 방식이고, 의료인력 공급자는 철저하게 시장경제에 의해 움직인다. 즉, 의료서비스는 소득에 따라 차등 비용분담을 하며, 모든 국민은 동일한 혜택을 받는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는 사회주의 원칙이 적용되는 셈이다. 그러나 의료인력 공급은 시장경제 중심이어서 의료수요가 많은 분야로 고액 연봉이 형성되고 의료 인력의 쏠림이 나타난다. 저출생에 따른 소아과·산부인과를 비롯한 필수의료인력의 부족사태와 고소득자가 몰려있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대도시로의 의료수요가 몰리면서 비수도권은 의료 서비스 공백이 발생한다. 대규모 수요는 높은 소득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소득의 증가·고령사회의 진전과 건강하고 아름다워지려는 욕구가 결합되면서 의료수요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높은 화폐가치를 창출하는 분야로 의료인력이 집중된다. 여기에 더하여 의료인력은 면허 등을 통한 독점적 구조를 가지고 있어 수요가 증가한다고 해도 탄력적으로 늘지 않기 때문에 의사 연봉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의사협회가 의과대 정원 증원에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사수의 부족과 특정 분야로의 집중은 의료서비스와 인적자원 배분의 왜곡을 가져온다. 저출생 시대에 출산할 병원이 없고, 아이들이 아파도 갈 병원이 없으며, 비수도권 농촌의 어르신이 아파도 먼 거리의 병원에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은 현재의 의료시스템으로는 개선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한다는 사회적 담론은 의료 인력을 시장재에서 공공재라는 관점에서 보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와 동시에 의사직업이 우리나라의 인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상황에서는 위대한 과학자, 예술가, 사상가들이 나오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의 근본적 해결은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는 능력주의를 재검토하고, 단일의 가치가 아니라 다양한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로의 전환으로 논의를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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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기업 돋보기 5.장부식 씨엔에이바이오텍㈜ 대표

[충북일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 국내 시장에 '콜라겐'이라는 이름 조차 생소하던 시절 장부식(60) 씨엔에이바이오텍㈜ 대표는 콜라겐에 푹 빠져버렸다. 장 대표가 처음 콜라겐을 접하게 된 건 첫 직장이었던 경기화학의 신사업 파견을 통해서였다. 국내에 생소한 사업분야였던 만큼 일본의 선진기업에 방문하게 된 장 대표는 콜라겐 제조과정을 보고 '푹 빠져버렸다'고 이야기한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에게 해당 분야의 첨단 기술이자 생명공학이 접목된 콜라겐 기술은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분야였다. 회사에 기술 혁신을 위한 보고서를 일주일에 5건 이상 작성할 정도로 열정을 불태웠던 장 대표는 "당시 선진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일본 기업으로 선진 견학을 갔다. 정작 기술 유출을 우려해 공장 견학만 하루에 한 번 시켜주고 일본어로만 이야기하니 잘 알아듣기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공장 견학 때 눈으로 감각적인 치수로 재고 기억해 화장실에 앉아서 그 기억을 다시 복기했다"며 "나갈 때 짐 검사로 뺏길까봐 원문을 모두 쪼개서 가져왔다"고 회상했다. 어렵게 가져온 만큼 성과는 성공적이었다. 견학 다녀온 지 2~3개월만에 기존 한 달 생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