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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2.14 16:16:51
  • 최종수정2023.02.14 16:16:51

정초시

(전)충북연구원장·충북도 특별고문

필자는 생물학적으로 노년의 시기에 들어서면서, 인생의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할 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였다. 경로의 존성에 따라 평범하면서도 안정적인 삶의 패턴을 그대로 유지하며 살 것인가, 혹은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갈 것인가의 고민이 항상 있었다. 그리고 일상을 탈출하여 나 자신의 체력과 정신력을 시험해보고 판단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어느 기업인이 주관하는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ABC) 트래킹 일정에 참여하였다.

총 13명의 대원과 약 20여 명의 산악가이드·포터·쿡 등으로 팀을 꾸리고 14박 15일의 일정으로 트래킹을 시작하였다. 13명의 참가자들은 대부분 초면이었으며 다양한 직업군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리더를 제외한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오랫동안 계획했다기보다는 머뭇거리다 용기를 내서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팀 이름을 '어쩌다 안나'라고 짓고 말았다. 트래킹 초반에는 세상에서 살았던 얘기들, 그리고 세상의 희로애락에 대한 대화가 주류였으나, 점차 높은 산을 오르면서 우리의 내면을 돌아보고 새로운 깨달음과 자연의 위대함에 대한 대화를 통해서 점차 자연과 일체가 되는 경험들을 하였다. 그리고 히말라야가 우리를 환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14박 15일 기간 중 약 8일 동안 실제로 산을 오르고 내려왔는데 필자의 스마트폰 측정으로 총 171,537보, 120.19㎞의 트래킹을 하였다. 해발 일천 미터 지점에서의 열대우림, 점차 오르면서 서럽게 아름다운 들꽃, 그리고 관목들을 지나 점차 가시덤블과 같은 고산식물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드디어 목표지점 ABC에 올랐을 때, 대자연은 커다란 상처를 입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ABC에는 만년설로 덮여있었는데, 눈은 모두 사라지고 황량한 바위와 눈사태로 남은 흙더미들이 앙상하게 남아있었다. 기후위기의 실체를 볼 수 있었으며, 문명의 이름으로 인간이 얼마나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이름에서 히말라야라는 '눈 덮인 산', 안나푸르나는 '풍요의 여신'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자연은 인간이 붙인 이름을 거부하는 듯하였다.

오르면서 점점 조여 오는 고산증, 그리고 생명의 원천인 식물들이 희소해짐 등은 인간의 접근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자연의 경고처럼 보였다. 그리고 자연에 저항하지 말고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고 적응하며 순응하라는 계시처럼 느꼈다. 빨리 성공해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최대한 느리게 한 발을 내딛으며, 자연이 받아드릴 때까지 기다리며 순응할 때 자연이 주는 선물을 만끽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제레미 리프킨이 "회복의 시대"에서 기후위기의 참상을 경고하면서 성장제일주의로 자연을 정복하려하지 말고 자연에 순응하며 회복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ABC에 가면 안나푸르나를 오르다 사망하거나 실종된 산악인들의 추모비가 있다. 박영석대장, 신동민, 강기석, 충북출신 산악인으로 지현옥대장, 민준영, 박종성의 추모비가 황량한 산과 칼바람을 맞으며 꿋꿋하게 서있으면서 우리를 반기고 있다. 왜 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더 높은 산으로 올라가려고 했을까? 점점 산을 오를수록 생명체는 점차 사라지고 죽음의 그늘이 드리운 산, 왜 그들은 죽음의 두려움을 무릅쓰고 더 높은 곳으로 오르려고 했을까? 죽음의 한계를 경험한 자만이 생명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다는 역설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충북의 산하를 생각해 보았다. 멀리는 백두대간, 우리가 늘 일상으로 오르내리는 우암산과 상당산성의 둘레 길을 생각하면서 새삼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인간이 자연을 향해 그렇게 상처를 주어도 묵묵히 참고 견디는 자연의 위대함을 보면서, 다시 생명의 원천이 어디일까라는 생각에 멈췄다. 바로 우리가 늘 대면하는 자연이다. 그리고 자연은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고자 하는 욕망을 무작정 참고 견디지는 않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자연과 공존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전적으로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의 품에 안길 때 가장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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