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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

빛과 그늘의 숨바꼭질을 즐기며 달리는 만추의 낭만여행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순천만에서 낙안읍성으로 가는 지방도로가 그러하다. 그곳에서 나는 색다른 마을을 발견했다. 별량면 대룡리 개랭이마을이다.

산 속에 5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정겨움을 더해주는 이 마을에서 할머니는 고들빼기를 다듬고, 할아버지는 구루마로 짐 나르기가 한창이다. 돌담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벗 삼아 낮잠자는 낭만고양이, 싸리문을 열면 삽살개 짓는 소리가 요란하고 마을회관에서는 아주머니들이 고들빼기를 씻고 버무리고 담느라 하루해가 짧다. 고들빼기 축제를 준비하는 모습들이다. 고들빼기는 식탁의 보약이다. 쌉싸름한 맛은 미각을 돋구고 식욕을 증진시키는 특징이 있는데 개랭이마을에서는 귀농한 청년과 원주민이 머리를 맞대고 이 마을에서 자생하는 고들빼기를 특화시키기로 하면서 매년 11월 축제를 하고 있다.

어디 이 뿐인가. 봄에는 황토방체험과 김치담그기와 효소체험을, 여름에는 꿀따기와 봉침체험과 장수벌레체험을, 가을에서 밤따기와 풀벌레체험·고들빼기체험을, 겨울에는 고구마와 밤구워먹기 등 계절별로 각기 다른 농촌체험 프로그램이 준비 돼 있다. 나그네는 가던 길을 멈추었다. 고들빼기김치를 버무리는 아줌마들 품으로 들어갔다. 아줌마는 빨갛게 버무린 김치 한 줌을 나그네 입 속에 집어넣었다. 때묻지 않는 숲의 냄새와 대지의 기운과 바람의 화원이 몸 안으로 끼쳐왔다.

순천지방에는 이처럼 농촌체험마을이 20여 개에 달한다. 매실, 야생차, 산촌체험 등 각기 차별화된 프로그램으로 도시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으니 각다분한 물욕의 세계를 벗어나 가지런한 농촌의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다.

순천의 매력은 이제 시작이다. 누구나 새가되고 갈대가 되고 바람이 된다는 순천만. 하늘 아래 나지막한 산과 너른 들, 갯벌, 그 끝을 알 수 없는 갈대밭에 들어서면 온 몸이 바스락 바스락 요동치니 사계절 국내외 투어리스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낙안읍성은 삶과 추억과 관광이 공존하는 곳이다. 정월대보름에는 민속한마당큰잔치가 열리고, 오월에는 낙안민속문화축제를 펼치며, 시월에는 남도음식문화큰잔치가 성대하게 문을 연다. 국악, 가야금병창, 한지공예, 전동악기, 천연염색, 길쌈공예, 서당, 대장간, 짚풀공예, 목공예, 도자기공방, 발효체험장 등 전통의 삶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로 알려진 송광사와 태고종 선암사 등 고찰과 시시각각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자연환경, 때묻지 않은 풍족한 농특산품도 순천의 자랑거리다. 게다가 선진화된 도서관 프로그램, 평생학습 시스템이 여느 도시 부럽지 않다는게 헛소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녹색수도 청주는 어떠한가. 도시환경, 교육과 복지시스템, 생태와 역사적인 자원, 농촌어메니티, 관광콘텐트 등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하루빨리 청주만의 DNA를 찾고 만들며 가꾸어야 한다. 청주읍성복원, 상당산성 일원의 전통테마파크, 안덕벌과 수암골 일원의 문화밸트, 농촌문화·농촌어매니티밸트, 박물관·미술관의 숲, 도서관 네트워크, 사계절 글로벌축제, 도시의 생태섬, 국제적인 문화쇼핑파크, 교육콘텐트 등 미래가치 상품과 희망프로젝트를 만들면 좋겠다.

산정에 도열한 나목들이 붉은 치맛자락을 나폴거리며 하산하고 있다. 한 세상 멋지게 살았으니 이만하면 됐다고 모든 것을 벗어버리려 한다. 발가벗은 나목, 사위어가는 것들을 보고 있노라니 하나같이 고독하고 가난해 보인다. 그렇지만 자연은 결코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지 않는다. 미련도 욕망도 아쉬움도 모두 떨쳐버리고 있다. 모든 생명은 새로운 마디에서 꽃이 피고 열매 맺고 단풍들지 않던가. 그래서 저것들은 지금 새 순을 키울 준비를 하고 있으니 얼마나 고운 아픔이던가. 바람이 슬쩍 어깨만 스쳐도 흐느끼며 울 것 같은 만추의 계절에 나그네는 정처없이 낯선 땅을 소요하였는데, 생각해 보니 결코 무익하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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