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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부장

충북 괴산군 괴산읍에 자리하고 있는 김득신의 옛 집인 취묵당에는 독수기讀數記가 걸려있다. 그가 평생 1만 번 이상 읽은 글 36편의 목록이 가득 적혀 있는데 사기의 <백이전>은 무려 1억1만3천 번이나 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서재를 '억만재億萬齋'라고 지은 것도 글을 읽을 때 1만 번이 넘지 않으면 멈추지 않는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 아닐까. 이보다 앞서 조선시대에 독서로 불우한 삶을 이겨낸 인물로 실학자 이덕무가 있었다. 그는 '간서치看書痴(책만 보는 바보)'라 할 정도로 책을 끔찍이 좋아했다. 서얼 출신이라는 신분적 제약을 독서로 극복했으며 그 결과 정조 임금의 신임을 얻어 규장각에 들어갈 수 있었다. 화양동에 있는 암서재는 우암 송시열이 낙향, 학문에 몰두하면서 100여권의 문집을 남겼다.

조선시대 서당에서는 책 한 권을 뗄 때마다 어김없이 했던 예식이 있었는데 바로 세책례洗冊禮다. 스승과 동문수학하던 벗들에게 음식을 차린 뒤 감사를 표하던 조촐한 잔치였는데 오랫동안 학문에 정진하라는 뜻으로 국수를, 학문을 가득 채우라는 뜻으로 송편을 준비했다. 스승은 게으른 학생에겐 부지런할 근勤, 성미 급한 학생에겐 참을 인忍이라는 글씨를 써서 봉투에 담아 선물했다. 이름하여 단자수신單字修身이다. 학업보다 인성과 배움의 자세를 먼저 생각했던 선조의 교육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은 서양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영국의 처칠은 아버지가 애독하던 <로마제국 쇠망사>를 군 복무 중에도 하루 5시간씩 탐독할 정도로 평생 이 책을 삶의 교훈으로 삼았다.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자에서 100년 만에 미국의 존경받는 대통령을 탄생시킨 케네디家J.F.케네디 형제들 모두 하버드대학에 다닐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현명한 자녀교육 때문이었다. 식사시간을 활용해 토론을 하고 신문의 중요한 내용을 읽도록 함으로써 통찰력을 키웠다.

현대에 와서는 책을 통한 국가브랜드 사업과 연계시켜 성공한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역사가 깊은 책 견본시장이며 축제의 장이다. 이탈리아 볼로냐는 크고 작은 도서관이 200여 개나 달하고 국제 아동도서전 등을 통해 책의 도시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매년 4월 '책과 장미의 축제'를 개최하고, 프랑스 퐁피드 전 대통령은 도서관과 미술관 등의 공간이 집적화된 퐁피드센터를 만들어 세계적인 명소가 되기도 했다.

올해가 국민독서의 해라고 한다. 우리나라 국민의 독서율은 66.8%로 국민 1인당 일주일에 3시간, 한달에 8천원을 책 사는데 투자하고 있다.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라고 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책 읽는 사회 풍토를 조성하고 국민의 독서력을 향상시키겠다며 독서치료 프로그램, 독서왕선발대회, 독서토론대회, 독서마라톤대회, 2012프로젝트(하루 20분, 1년에 12권 읽기) 등을 올 한 해 추진하기로 했다. 그런데 정작 자치단체나 교육기관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선심성 공약이 남발하고 포퓰리즘이 기승하면서 대한민국의 본질과 우리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 되레 이처럼 어수선한 분위기를 이용해 우리의 영혼을 혼미하게 만들고 있으니 이 나라의 미래가 있기는 한지 아리송하고 몽매할 뿐이다.

책은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꿈을 디자인하고, 자신의 열정을 담으며,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프라임이다. 더 나아가 번잡하고 막막한 회색도시에 아름다운 벗이자 동반자가 되기도 한다. 이참에 눈으로, 귀로, 몸으로, 마음으로 책을 읽고 다양한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하이브리드형 독서문화를 만들면 어떨까. 책과 미술과 공예와 예술이 만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인문학과 역사와 생태가 조화로운 콘텐츠를 개발하며, 책과 함께 떠나는 즐거운 소풍길을 만들고, 건물마다 북카페·북갤러리·북레스토랑 등을 만들면 좋겠다. 책과 문화가 물결치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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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