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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01.21 16:48:2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변광섭

나는 딸만 셋 있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재은, 연년생인 재원, 그리고 늦둥이가 재윤이다. 남들은 딸부자집이라며 시샘하는데 결코 부러워할 일도 못된다. 딸들이 어렸을 때는 매일같이 펼쳐지는 재롱잔치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기도 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스킨십이 줄어들고 서먹서먹한 분위기에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아빠와의 대화 시간보다는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시간, 그리고 TV나 핸드폰과의 밀월여행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사교육비 부담과 장래의 문제도 고민거리고 문 밖에만 나가면 도시의 늑대들이 서성거리고 있으니 딸 가진 부모는 하루하루가 위태롭고 불안하다.

불현듯 다가온 어색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계사년 새해 설계를 했다. 딸들과 함께 서울도성에서부터 제주읍성까지 전국의 읍성을 여행한 뒤 한 권의 책으로 펴내기로 했으며, 매주 인근의 산과 들을 함께 걷기로 했다. 또 온 가족이 모여 책을 읽고 박물관 투어 등 문화생활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나의 각오는 새해 첫날부터 물거품이 되었다. 대청호반으로 해돋이 여행을 하자는 제의를 '재미없다'며 단칼에 거절당했다. 점심나절에 아이들을 재차 설득해 시골길 드라이브와 산행을 강행하였지만 썩 기분 내키는 표정이 아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설경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담으면 좋겠는데 핸드폰에 머리 박고 게임을 하거나 음악을 듣는 등 딸들의 반란이 계속된다. 아, 어떻게 이해시켜 알곡진 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인지 고민이다.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는 말이 있다. 노장사상의 핵심이기도 한 도법자연은 형식과 가식을 없애고 대자연과 호흡하며 본래 타고난 모습으로 살아야 진정한 도를 얻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장자는 진정한 삶이란 자기와는 안(安)해야 하고, 남과는 화(化)해야 하며, 자연과는 락(樂)해야 하고, 도와는 유(遊)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의 삶이 지금보다는 훨씬 원시적이고 유목과 목가적이었을 그 옛날, 이처럼 도법자연을 외친 것을 보면 그들은 이미 미래를 꿰뚫는 혜안을 갖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중국 고전 번역가로 유명한 웨일리는 세상에서 가장 심오하고 흥미로운 책이 바로 '장자'라고 했다. 세계적인 석학 앨빈 토플러 역시 "서구 문명의 폐단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세계는 동양사상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외쳤다.

고산 윤선도는 '오우가'에서 수석(水石)과 송죽(松竹), 그리고 동산의 달을 다섯 벗이라며 자연에 묻혀사는 즐거움을 노래했다. 또 유배지인 전남 완도의 보길도에서 아름다운 대자연의 사계(四季)를 '어부사시사'에 담았다. 오죽하면 꿈결같은 섬의 풍경과 고기잡이의 유유자적한 삶을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어사와"라며 춤으로, 노래로 부르지 않았던가. 비슷한 시기에 우암 송시열은 산 좋고 물 맑기로 소문난 화양동으로 낙향해 학문에 몰두하면서 100여권의 문집을 만들었다.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수많은 창작물을 쏟아내지 않았던가. 자연을 벗 삼으면 각다분한 세상 이야기를 멀리할 수 있고 생각이 맑아지면서 시심에 젖게 된다. 사람의 마음이 순해지는 것이다.

자고이래 우리 민족은 산과 하천과 들을 과분할 정도로 좋아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고 싶은 사람들로 산과 들과 호수는 인산인해다. 이 때문에 산행과 자전거 동호회가 넘쳐나고 있으며 사진, 영상, 캠핑, 인문학 등 각양각색의 동아리가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그들만의 꿈을 빚고 새로운 미래가치를 찾는다. 나가 아니라 '우리'가 시대의 화두가 되고, 웰빙과 힐링이 대세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참에 우리고장의 구석구석을 각기 차별화된 멋과 맛과 향기로움이 물결치도록 하면 좋겠다. 발 닿는 곳마다, 눈길 마주하는 곳마다 역사와 문화와 예술의 향연으로 가득하고 숲길과 들길과 물길을 벗 삼으며 자족할 줄 아는 곳 말이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아름다움에 젖고 꽃노래에 젖고 미래가치에 젖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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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