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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

시골에서 자란 소년은 겨울만 되면 손과 발에 검은 때가 가득했다. 북풍한설과 함께 손등은 소천엽처럼 너슬너슬하고 쩍쩍 갈라지기 일쑤였는데 쓰리고 가려워 견디기 힘들었다. 얼굴까지 트고 까칠해질때는 거울 앞에 서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끔찍했다. 그렇지만 동네 형이나 또래 할 것 없이 모두가 흉측한 모습들이니 그리 슬퍼할 일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설날을 앞두고 묵은 때를 벗겨야 한다며 쇠죽솥에다 끓인 물을 허리까지 차 오르는 둥글 넙적한 대야 속으로 형제들을 집어 넣었다. 뜨거운 물에 때를 불리고 얼굴에서부터 목과 가슴과 손등과 허벅지를 따라 내려가 발톱에 이르기까지 볏집 똥구멍에서 빼낸 검불로 문대면 국수줄기 같은 굵은 때가 끝없이 쏟아졌다. 어머니는 장롱에 숨겨놓았던 동동구리무를 꺼내 소년의 얼굴과 손등에 발라주었다. 동동구리무의 깊고 은은한 향기, 흉측한 몰골이 우윳빛처럼 뽀얗고 보드라운 모습으로 변신하는 신비로움을 소년은 잊을 수 없다.

동동구리무는 봇짐을 지고 오는 방물장수 아주머니에게 곡물과 바꿔 구입한다. 방물장수는 화장품 외에도 바느질 기구나 패물 등 여인들의 생필품을 팔기 위해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아 다녔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인들에게는 귀한 손님이자 세상 이야기를 엿듣는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아름다움은 인류의 태동과 그 맥을 같이한다. 기원전 7500년경 이집트의 종교의식에서 시작된 화장의 역사는 끝없이 진화하며 인간의 욕망을 담아왔다. 삼국시대에는 자연물을 활용한 화장술과 화장품이 발달했으며, 고려시대에는 머리치장에 쓰는 향유(香油)가 수출되었고, 조선시대엔 일본에서 유행한 화장기법이 도입되기도 했다. 창포로 머리를 감는 것도 화장법의 일종인데 '미인도', '스캔들' 등 조선시대의 풍경을 담은 영화에도 화장술을 미려하게 묘사하고 있다.

국산 화장품의 효시는 1922년에 제조된 '박가분'이다. 쌀가루나 조개껍데기, 분꽃씨 등을 빻아 만들었는데 이후 서가분, 장가분 등 유사제품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동백 머릿기름과 크림이 속속 등장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미군 매점에서 흘러나온 외제 화장품이 인기였으며 '양공주'처럼 직업여성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이후 청순미의 오드리 헵번, 관능미의 메릴린 먼로, 영혼조차 아름답다는 착각을 갖게하는 소피 마르소, 그리고 국내 유명 여배우들의 화장품 광고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움을 탐하고, 예술의 경지를 넘나들며, 매혹적인 자태와 여성의 미를 한껏 뽐내는 가장 중요한 도구와 기법으로 자리잡았다. 지금은 샤넬, 디올, 랑콤, 에스티로더 등 해외 유명 브랜드와 함께 연간 10조원대의 거대 시장으로 성장했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 드라마와 K팝 열풍에 힘입어 동반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 한국의 화장품이라고 한다. 이른바 K뷰티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가까운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는 물론이고 유럽과 미국에서도 인기가 높다. 여기에다 발효과학의 산물인 발효화장품과 한방화장품은 브랜드와 특성화로 고공행진이고, 아토피나 건선피부에 좋은 기능성 화장품도 인기다. 남자들을 위한 화장품도 속속 선보이면서 '화장하는 남성' 시대의 문을 열기도 했다. 어디 이뿐인가. 화장품을 담는 용기도 뛰어난 예술성과 디자인으로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으니 단순한 상품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삶을 아름답고 윤택하게 하며, 통섭과 융합의 시대정신을 만나고,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발전하면서 세상을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연출하고 있다.

오송화장품뷰티박람회 개막이 임박했다. 생명과 태양의 땅 오송에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모여서 진검승부를 할 것이다. 양귀비와 클레오파트라에서부터 한류스타에 이르기까지, 전통의 미학에서부터 바이오기술을 통한 생명연장의 꿈에 이르기까지, 산업에서부터 체험과 문화예술의 마당에 이르기까지 오감이 행복한 축제의 장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오송과 충북이 K뷰티의 중심, 세계 문화의 중심에 서기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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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