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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광섭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창조경제팀장

총과 칼, 가난과 두려움으로 무장한 아이들이 있었다. 희망보다는 절망, 용기보다는 좌절이 그들의 앞날을 암울하게 했다. 그들은 무기대신 악기를 들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희망의 싹이 자랐다. 베네주엘라 빈곤지역에서 울려 퍼지는 오케스트라 하모니 엘시스테마의 결실이다. 엘시스테마는 지금 지구촌의 청소년 수십만 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바이올린, 피아노, 호른 등의 악기를 연주하면서 희망을 꽃피우고 있다.

피아노 건반은 모두 88개다. 88개의 건반에 똑 같은 소리가 난다면 어떻게 될까. 악기가 아니라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될 것이고 지금의 위대한 피아니스트와 예술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소리, 서로 다른 생각, 서로 다른 환경 등이 모여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문화를 빚으며 예술을 찬미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다른 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풍성함을 경험할 수 있고,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다채롭게 느낄 수 있으며, 서로 다르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언제나 새롭고 설렘이 있으며, 긴장과 호기심도 확장되는 것이다. 여행길에서 만나는 꽃과 나무와 빛나는 호수를 통해 삶의 찌꺼기를 토해내며 삶의 활력소를 얻는 것도 생성과 소멸이 끝없이 반복되며 변화하는 생명의 다양성 때문이다. 전시와 공연과 축제의 현장에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고 벅찬 감동이 밀려오는 것 역시 각기 다른 예술가들의 땀과 열정을 호흡하기 때문이다.

'우분트'는 남아프리카 반투어의 말인데 '우리이기에 내가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너와 내가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함께 하기에 내가 존재하며,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배려하며 공동체를 위하는 마음으로 행동하자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좋은 일을 하면 그 향기가 천리를 가고 만리를 가는 것처럼, 그 삶의 가치가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것처럼 이 세상은 서로 다르지만 하나처럼 연결되어 있다.

한중일 3국이 함께하는 동아시아문화도시도 다양성을 존중하며 하나의 공동체를 꿈꾸는 노력의 시작이다. 지난해부터 청주시는 중국의 칭다오, 일본의 니가타와 손잡고 공연, 전시, 학술 등 다양한 교류활동을 펼치고 있다. '생명문화도시 청주'라는 슬로건과 함께 청주의 다채로운 생명문화 가치를 동아시아로, 세계로 확산하는 일은 물론이고 상대방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며 다가가는 일들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이를 통해 똘레랑스(관용)와 노마디즘(인식의 확장)을 갖게 되고 갈등과 대립의 굴절된 역사를 사랑과 협력으로 새 시대로 빚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청주·칭다오·니가타의 청소년들이 문화교류를 즐기고 있다. 나라가 다르고 역사가 다르며 언어가 다르지만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즐기면서 마음의 문이 하나씩 열리고 있다. 니가타에서는 농업, 음식, 애니메이션 등의 체험을 즐겼으며 청주에서는 도자, 한지, 인쇄, 젓가락, 바리스타 등의 체험과 교류활동이 펼쳐졌다. 젓가락체험을 통해서는 생명문화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각국 정부의 원수들에게 아이들이 직접 만든 젓가락을 손으로 쓴 소망편지와 함께 보내기도 했다. 다음 주부터는 칭다오에서 음악을 테마로 한 청소년문화교류가 펼쳐진다.

도시별로 3박4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두려움과 긴장의 그 자리에 기쁨과 감동으로 가득하고 우정의 꽃이 활짝 피었다. 헤어질 때는 서로 포옹하고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며 희망에 찬 미래를 엿본다. 이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마음껏 희망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무감에 어깨가 무겁다.

엘시스테마 창시자 호세안토니오는 "인간에 있어 가장 성스러운 권리는 예술의 권리"라고 말했다. 크리에이터 이어령은 "AI를 전쟁에 사용하면 재앙이 될 것이고 예술에 사용하면 삶이 행복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문화로 희망하고 예술로 그 꿈을 펼치기 위해 마음의 문을 열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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