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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

지난 설날 고향길에서 30년 만에 만난 친구 이야기가 내 마음속에서 징징거립니다. 30년만의 만남은 결코 감동적이지 않습니다. 되레 낯설고 서먹서먹하며 마른 장작처럼 건조할 뿐입니다.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아픔과 미련과 기쁨을 품고 여기까지 달려왔는지 주름 깊은 친구의 얼굴을 통해 읽으면서 세월의 물살만큼이나 나와 친구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간극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다만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읽으려 했고, 옛 생각의 아날로그에 마음을 맡기고 싶었던 것이지요. 천만다행으로 친구는 내게 살갑게 다가와 자신의 삶을 털어놓았습니다. 여기서 가슴 징하게 울리는 게 있어 친구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친구에게 아들과 딸이 있는데 언제나 아들의 행동이 아슬아슬하고 걱정거리였습니다. 아들은 고등학교 1학년 때 공부가 싫다며 스스로 학교를 포기하더니 방황의 골이 더 깊어졌습니다. 고시원도 다니다 말고, 운동을 하다가 포기하고, 친구들과 이따금 싸움도 하고, 아무 소식 없이 여러 날을 집 밖에서 서성거리기도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이 정신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몇 푼으로 옷을 사 입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등 예전의 행동과는 다른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여자 친구가 생긴 것입니다. 학교를 포기한 것도 속상한데 여자친구라니…. 녀석의 앞날을 생각하니 먹구름만 가득하고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아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 다시 만나지 말라, 헤어져라, 정신 차려야 한다며 호되게 야단을 쳤습니다. 그런데 녀석은 무릎을 꿇으며 엉엉 울기 시작하네요. 아빠, 나 그 여자 없으면 못 살아. 죽을 것 같아. 그러니 그냥 내버려 둬. 잘 살 수 있어…. 녀석의 절규에 친구는 온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돌아서서 생각해보니 녀석의 절규는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녀석에게 이처럼 간절했던 적이 있었던가 싶습니다. 그래서 녀석을 이해하기로 했지요. 여자와 사귈 수 있도록 허락한 것입니다. 대신 한 가지의 기술을 배워 스스로 미래와 인생을 책임지도록 했습니다. 녀석이 기뻐하며 선택한 것은 미용사였습니다. 여자 친구에게 부끄럽지 않은 최고의 미용사가 되겠다며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받고 틈틈이 애인도 만나더니 어느 날 밤 얼굴에 상심이 큰 표정으로 귀가했습니다. 너 요즘 무슨 일 있니· 왜 얼굴에 생기가 없는거야· 녀석은 애비에게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보여주며 여자 친구가 변심한 것 같답니다. 문자를 읽어보니 "우리가 서로 사랑한 것 맡니· 내게 시간을 줘"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애비는 녀석에게 한 수 가르쳐 주었죠. 사랑한다고 해라. 그리고 하트를 50개 만들어 보내거라. 여자는 죽는 그 날까지 '사랑한다'는 소리를, 남자는 '멋있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한단다. 3일 동안 연락도 없는 친구는 사랑한다는 메시지에 불과 몇 초도 되지 않아 "나도…"라는 짤막한 답글이 왔답니다. 그날 이후 그들의 사랑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게다가 녀석은 시내 한 복판에 있는 미용실에서 잘 나가는 미용사가 되었지요. 녀석의 꿈이 영글고 있으니 애비는 더 이상 자식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우리나라에서 연간 6만 명의 10대가 학교를 떠난다지요. 가족은 해체되고 학교는 경쟁과 서열만 부추길 뿐 개개인의 인성과 재능을 살리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아들을 구해 낸 친구의 지혜는 뭔가 깊은 의미가 담겨 있네요. 어디, 자식문제 뿐이겠습니까. 가정의 문제, 직장의 문제, 사회의 문제, 그리고 우리 모두의 문제 속에 답이 있지요. 다만 우리는 그 답을 찾지 못했을 뿐입니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삶의 여백을 찾으세요. 그 곳에 답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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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