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

오늘도 산을 오른다. 소나무 숲에 들어가면 솔잎 향에 마음 빼앗기고, 참나무 숲에서는 높이 솟은 의연함에 감동이 밀려온다. 이따금 만나는 자작나무 숲에서는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숲 속으로 몸을 던져야 한다. 특히 겨울산은 상처난 삶을 치유하고 싶은 사람에게 최고의 선물이다. 화려했던 가을의 기억을 언 땅에 묻고 눈부시게 하얀 산길을 걸어보라. 뽀드득 뽀드득 대자연의 숨소리를 들으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그 속살을 드러내 놓고 있는 나목, 그곳에 눈꽃이 피고 상고대가 피며 새들이 춤을 추고 노래하면 나는 마음 둘 곳을 잃는다. 자연아, 나 어쩌란 말이냐, 너의 순결을 내 어찌 거둘 수 있단 말이냐. 순간 나도 모르게 자연 속으로 동화되어가니 숲속의 악동이나 다름없다.

벌거벗은 나목이 북풍한설에 맞서 침묵으로 자신을 지켜내는 것을 보면서 각다분한 삶의 이야기에 쉽게 상처받고 다투며 욕망만을 쫓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부끄러움에 앞을 볼 수 없다. 때로는 숲속에 있는 것 자체가 사치라는 생각도 한다. 눈꽃으로 도열해 있는 산봉우리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신묘한 것은 자연은 항상 자신의 이야기를 비밀로 하고 있다. 꽃이 피면서도, 연둣빛 새순이 돋우면서도, 녹음방초의 신록에서도, 붉은 핏빛으로 가득한 만추의 계절에도 자연은 자신의 이야기를 그 누구에게도 내뱉지 않는다. 그것이 궁금해 그 속으로 들어가지만 그 때마다 비밀의 방에 갇힐 뿐이지 비밀의 열쇠를 찾지 못한다. 그래서 자연은 항상 명료하고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나무는 나무끼리, 새들은 새들끼리, 바람은 바람끼리, 물길은 물길끼리 서로 어울리며 그 경계를 쉼없이 넘나든다. 한결같이 새로운 신비와 생명과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런 자연속에서 나는 오르가즘을 느낀다. 삶의 위대함과 대자연의 경외감 앞에 코끝이 징하도록 눈물이 쏟아진다. 산허리를 붙잡고 목놓아 울었던 것이 어디 한 두 번인가.

생각해보니 인간이라는 존재도 수많은 대자연 속에서 숨쉬는 작은 생명에 불과한데 지나치게 문명과 욕망과 자신의 이기만을 쫓으며 살아왔다. 도시의 삶 자체가 그럴 수밖에 없다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고, 위로받고 싶지만 나는 나의 삶을 방기하며 업을 더하고, 그 업만큼 번민하고 고뇌에 찬 삶을 강물처럼 흘러보내지 않았던가. 어느덧 지천명이 코앞이고 내 삶의 고비마다, 마디마다 모성적인 자연의 품을 갈망하는 것을 보면 자연만큼 나를 이해하고, 내게 희망을 주는 것도 없다는 생각에 젖는다. 그곳에서 쑥부쟁이 같은 추억도 만나고 할미꽃 같은 슬픔도 만나며 파란 하늘을 닮은 소망을 담지 않았던가.

불현듯 아름다우면서도 서럽고, 고단하고 힘들면서도 따뜻했던 옛 풍경들이 흑백사진처럼 밀려온다. 신경림은 '답답하고 고단하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꺼나/고개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라며 시골풍경을 노래했다. 노래와 춤과 공동체의 삶을 통해 '우리'라는 뜨끈뜨끈한 끈기와 우정과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정지용은 '흙에서 자란 내 마음/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며 잃어버린 시간을 향수라는 이름으로 노래했다. 넓은 벌과 실개천, 파란 하늘과 풀섶 이슬, 그리고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바로 그곳이 우리의 고향이자 어머니의 품이며 치유의 바다가 아니던가.

올해는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고, 서로에게 꽃이 되게 하고, 서로를 껴안으며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그 세상에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온하게 살다 가는 그런 삶이 아니라, 낯설고 고단하고 타락하고 질퍽한 세상이 아니라, 뜨거운 햇살과 비바람을 막아주는 그늘, 배고픔과 실직과 고독과 방황을 잊게 하는 호수, 사랑의 상처와 이별의 아픔이 없는 하늘이면 좋겠다. 아니, 아파도 새살 돋는 꽃들의 잔치가 되면 더욱 좋겠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