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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4.19 16:26:0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총괄기획부장

이건 아니다. 국제적인 섬유박람회를 시골 창고에서 개최하다니, 작품을 보내고 한국 작가를 동행해 직접 방문한 것이 후회스럽기까지 했다. 사실 프랑스 보졸레 퀼트엑스포 사무국에서 한국의 조각보를 전시하고 바느질 솜씨를 보여 달라는 요청이 있을 때 이것저것 따지지도 묻지도 않은 것이 화근의 시작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콧대 높고 성격 까칠한 프랑스 사람들에게 유럽의 몬드리안보다 더 아름답고 값진 한국문화를 소개하리라 다짐했던 것이었는데 출발부터 분위기가 심산했다. 행사를 알리는 사인물 하나 없고 사람들의 그림자로 찾을 수 없어 스산할 뿐이었다.

개막 전야제라며 전시 관계자들을 초청했을 때도 심드렁한 마음이었다. 이 동네 특산물인 와인과 빵조각 몇 개만 있을 뿐 누구 하나 인사하지도 않고, 인사를 강요하지도 않으며, 그 어떤 요식행위도 없었다. 그저 삼삼오오 모여 장거리 여행으로 컬컬해진 목구멍에 와인의 향기만을 담을 뿐이었다. 그래, 이왕 보졸레까지 왔으니 낯선 여행, 낯선 설레임, 낯선 문화를 원 없이 가슴에 품고 가자. 그리스 시인들은 와인을 마시는 즐거움과 쾌락을 "위대한 신 디오니소스가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에게 와인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도록 해주었도다. 그리하여 모든 고통이 멈추게 되었느니!"라고 하지 않았던가. 기왕에 먼 걸음 했으니 상처받지 말고 프랑스 구석구석을 투어하는 순례자가 되어보겠다는 생각을 하며 와인을 홀짝홀짝 마셨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미리 준비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행사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던가. 간단한 개막 세레머니가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봉주르 무슈"라는 인사와 함께 수많은 색과 색 사이에서 세상 사람들의 호기심과 수다가 쏟아졌다. 15개국에서 70개 팀 400여 명의 섬유작품들이 소개되고 있었는데 단연 우리의 것이 으뜸이었다. 국가마다, 부스마다 하나의 단어로 끄집어낼 수 없는 미묘한 차이가 존재했는데 한국의 조각보는 황후의 위풍당당한 멋과 소박하고 정갈한 향기와 자연스러운 맛이 가득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는 권선홍, 박현주, 신희정, 윤강희, 이소라, 이연숙, 이옥자, 정란, 정정숙, 최미선 등 10명. 모두 청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줌마들이다. 유럽인들은 한국 여인이 손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조각보를 만든 것들을 꼼꼼하게 둘러보면서 세상 어느 나라에도 찾을 수 없는 신묘한 풍경이라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기계수의 겹보와 섬섬옥수 홑보의 차이가 이토록 크고 깊고 넓은 것인지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더욱 주목받았던 것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우리 일행의 바느질 솜씨였다. 자연에서 얻은 염료로 색을 입힌 천 조각을 바느질로 이어나가고 다양한 색과 모양과 기능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모습을 지켜본 유럽인들은 한복의 미려함과 바느질 솜씨를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유럽인들의 호기심은 한국인의 날 행사장으로 이어졌다. 조각보 탄생 배경과 기술과 활용법을 묻는 질문이 쏟아졌고, 우리는 자연친화적이고 생활중심의 실용미학과 한국 여인의 절제된 예술혼을 설명했다. 조각보에는 한국인만의 따뜻함과 통섭과 융합의 정신이 담겨있으며 최첨단 IT기술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화답했다. 드라마에 이어 K팝이 아시아와 유럽을 강타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한국의 공예문화가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훔칠 것이라는 확신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흥분돼 미칠것만 같았다. 견물생심이라고 했던가. 이쯤되니 청주시립예술단의 흥겨운 우리가락 한마당과 삼겹살 파티를 열면 최고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친김에 우리 일행은 유럽 사람들과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언어와 인종과 국경을 넘어 세상이 아름다움으로 물결치는 순결한 시간이었다.

그날 저녁 우리 일행은 한국의 조각보가 유럽 여인들의 마음을 훔친 외도를 자축하기 위해 도도한 와인으로 건배를 했다. 붉고 찬란하게 물든 와인향처럼 우리의 마음도 오방색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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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