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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광섭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창조경제팀장

말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숲길을 걸었다. 거짓과 위선과 욕망으로 얼룩진 세상을 잠시 피할 요량으로 오직 자연만을 생각하며 숲속으로 달려간 것이다. 푸른 기운 가득한 그 곳에 서니 사사로웠던 감정들이 바람의 현을 타고 흩날리기 시작했다. 자연은 항상 이처럼 명료하고 엄연한데 사람의 일만 정처 없고 무지했던 게 아닌가 싶다. 꽃의 절정에서 낙화의 미학을 알고, 버려야 할 때 더욱 빛나며, 매 해 새로운 마디를 위해 새순 돋는 상처를 허락하는 자연 앞에 서니 나의 일은 하찮고 부끄럽다.

천년의 신화와 전설, 사계절 신비로 가득한 상당산성 정상에서 시내를 굽어본다. 드넓게 펼쳐진 도시의 풍경과 대지의 합창과 흐르는 강물과 자연의 숨결이 답답했던 내 가슴속으로 밀려온다. 왜 청주가 생명문화도시인지 말로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풍경 그 자체만으로 고개가 끄덕인다. 깊고 느린 도시, 맑고 향기로운 도시, 삶의 여백과 생명의 가치로 가득한 도시, 그리고 시민들이 꿈을 빚고 마음껏 희망하는 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그렇지만 생명문화도시가 단지 슬로건으로 그치지 않고 삶에 스미고 도시의 경쟁력이 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청주만의 특화된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고 생명문화의 가치가 사회 전반에 뿌리 내리게 하는 일이다. 우선 도시 곳곳이 삶의 여백과 역동성으로 가득해야 한다. 청주의 나무와 숲과 호수와 생명농업을 테마로 한 스토리텔링, 청주만의 생명음식을 개발해야 한다. 청주에는 수백 년 수령의 보호수가 200여 그루 있고 가로수길, 옥화구곡, 대청호 등 때묻지 않은 자연이 있지 않은가. 생명농산물, 청주삼겹살, 세종대왕 힐링음식도 세계적인 생명자원이 될 수 있다.

생명을 테마로 한 문화예술 콘텐츠도 특화시키자. 생명문화공동체 세살마을, 두꺼비 생태공원, 생명미술, 생명음악, 생명공예, 생명건축 시리즈를 만들어야 한다. 보리작가 박영대 화백을 테마로 한 생명미술관, 문의면 일원의 생명공예·생명젓가락 마을, 시립예술단의 생명음악 콘텐츠, 생명의 숨결로 가득한 한옥과 근대문화유산 등 곳곳에 생명의 온기로 가득한 도시를 만들자는 것이다.

생명도시 이름에 어울리는 공간을 가꾸는 일도 필요하다. 무분별한 간판, 불법 현수막, 무질서, 불친절, 범람하는 쓰레기는 생명문화도시 청주의 오적(五賊)이다. 예쁘고 정갈한 간판, 도시의 건물과 공공 디자인, 사계절 꽃과 나무로 가득한 도시, 아기자기한 골목길과 문화자원 등의 오달지고 마뜩한 풍경이 오가는 사람의 발목을 잡고 시심에 젖게 해야 한다. 까치발을 하면 청주만의 낯선 풍경에 가슴 설레는 도시 말이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세상을 열어야 한다. 청주를 대표하는 선각자를 발굴하고 청년 인재를 양성하며 평생학습의 가치를 드높여야 한다. 100세 시대를 맞아 행복한 삶을 견인할 수 있는 인생 이모작·삼모작 창조학교를 만들어 꿈이 곧 현실이 되는 도시, 언제 어디서나 춤추고 노래하며 악기를 다루고 책 읽는 소리로 가득한 도시, 시민 모두가 창조자이고 아티스트인 도시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청주는 생명자본으로 가득한 살맛나는 도시가 되면 더욱 좋겠다. 바이오, 뷰티, 의료과학이 미래를 밝히고 생명자본이 브랜드가 되고 상품이 되어 시민들의 바른 먹거리가 되면 좋겠다. 세상 사람들이 청주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면 좋겠다. 아날로그에서부터 디지털까지 생명문화와 생명자본을 잉태하고 결실을 맺는 도시 말이다.

천 년 후, 우리의 후손들이 청주에 살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무심천의 다리를 건너고 가로수길을 달리며 산성의 소나무 숲을 자박자박 걸을 수 있다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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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