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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광섭

동아시아문화도시 사무국장

이른 아침에 대청호변 양성산을 한 바퀴 돌았다. 어김없이 동트는 햇살이 마중 나왔고 낙엽은 하나 둘 붉게 물들면서 바람따라 아래로 고개를 떨구기 시작했다. 이따금 낙엽이 어깨를 스치면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 가을이구나. 어느 시인은 버려야 할 줄 알 때 가을은 눈부시게 빛난다고 노래했는데, 나는 욕망에 사로잡혀 세상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으며 살아온 것을 생각하니 부끄럽고 난망하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거짓과 위선과 각다분한 상념을 털어놓고 비움의 미학을 채워야겠다.

올 가을은 유난히 바쁘고 어수선했다. 지난 1월부터 동아시아문화도시 사업을 펼쳐왔는데 이 가을에 알곡진 결실을 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역에서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청원생명축제, 청주읍성큰잔치, 괴산유기농엑스포, 중국인유학생페스티벌 등의 크고 작은 축제가 펼쳐졌다. 박물관·미술관·갤러리에서는 다채로운 전시로 가득했고, 공연장에서는 지역 예술인부터 세계 각국의 공연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공연이벤트로 넘쳐나고 있다.

동아시아문화도시에서는 '음식과 문화'를 주제로 한 창조학교, '소로리볍씨와 생명문화도시 청주'를 주제로 한 국제심포지엄, '이어령의 100년 서재' 프로그램 등을 전개했고, 중국과 일본에서도 미디어교류와 서도교류 등이 잇따랐다. 문명의 세계에서 문화를 마치 진정제처럼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볼 때도 있지만 문화는 진정제가 아니다. 삶을 아름답고 윤택하게 해주는 비타민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세계를 연결해주는 탯줄같은 것이다.

그런데 문화현장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할 때마다 뭔가 마음 한 구석이 썰렁하고 불안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행사가 아무리 훌륭하게 전개되고 좋은 평가를 얻는다 할지라도 진흙밭을 걷듯 괴로움에 몸서리쳐야 했다. 처음에는 이것이 성장통이나 후유증 정도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의 행동과 판단과 그 결과가 바른 것이지 고심참담(故心慘憺)의 시간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어령 동아시아문화도시 명예위원장은 만날 때마다 생명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상의 그 어떤 예술도 생명보다 위대할 수 없다는 것이고, 생명문화가 곧 국가와 지역과 개인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생명이 자본이다>라는 책에서 금붕어 유레카의 경험을 통해 사랑, 공감, 감동,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생명자본주의를 이야기하고 바다, 하늘, 들판, 태양 등을 생각하면 생명이 곧 자본임을 알게 된다고 했다. 콩 세 알을 땅에 뿌리는 농심과 까치밥과 고수레의 풍습처럼 생명의 가치는 곧 문화로, 예술로 이어지는 것이다.

소설가 박완서는 "자연이 한 일은 모두 옳았다"며 자연이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를 말없이 가르친다고 했다. 중국 고대 미학을 다룬 '화화미학'이란 책에는 "천지는 크게 아름다우나 말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나는 도시에서 받은 상처를 대자연을 통해 치유 받는다. 진달래꽃이 무진장 핀 숲길을 걸으면서 그 아름다움에 취해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소나무 숲을 달리다가 진한 솔잎향에 온 몸이 감전되는 충격을 겪기도 했다. 햇살을 따라 자박자박 걸으며 가을의 시인이 되기도 하고, 바람의 비밀을 찾아 나서기도 하며, 새들과 다람쥐가 노니는 그 곳에서 무위의 신비를 경험하지 않았던가.

이제 문화의 길도 엄연해졌다. 당장의 이익과 감동에 연연해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고 문화예술과 아름다운 삶으로 이어갈 수 있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 자연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삶, 생명과 문화가 하나되는 도시, 마음의 풍경을 가꾸는 일, 생명의 가치를 문화속에 담고 더 큰 내일의 창을 만들어가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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