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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광섭

동아시아문화도시 사무국장

알랭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여행이란 생각의 산파라고 했다. 행복을 찾는 일이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면, 여행은 그 일의 역동성을 풍부하게 드러내준다. 일과 생존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여행 속에서 발견하는 숭고한 풍경은 우리를 좀 더 즐겁고 새롭게 하며 고요와 놀라움을 준다는 것이다.

그날 밤, 영동군 민주지산 자락 도마령에 둥지를 틀고 사는 고자리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를 앙가슴 뛰게 했다. 때묻지 않은 청정 계곡과 숲속의 비밀, 밤이 되면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멋진 신세계를 품고 사는 고자리 사람들이 하나 둘 도담요에 모였다. 마을 토박이, 팬션 운영자, 귀촌인, 그리고 도담요 주인이 늦은 밤 작당을 시작한 것이다. 도담요는 도예가 김계순씨가 십 수 년 전 이곳에 정착해 장작가마를 짓고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이들의 화두는 고자리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마을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하늘이 빚어낸 자연환경, 그 속에서 자라고 있는 포도·사과 등의 특산품, 숲과 계곡의 대자연을 품고 있는 각양각색의 효소와 발효식품, 해발 800m에서 만나는 별들의 잔치…. 30여 가구에 불과하지만 오랜 세월의 퇴적층이 쌓여있는 마을도 지키고, 사람도 살며, 세상과 함께할 수 있는 그 무엇이 필요했던 것이다.

마침 전통 장작가마로 흙을 빚는 도예가, 음식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셰프, 의사, 여행설계사 등 외지인들이 고자리의 풍광에 매료돼 정착해 있고, 국악인·서예가 등의 예술인들이 종종 이곳을 즐기고 있으니 이들과 연계한 문화콘텐츠를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주민들이 힘을 모아 올 가을 이곳에서 도마령 콘서트나 별무리축제를 열고 도시민과 마을주민이 함께 꿈을 빚고 행복을 나누는 이벤트를 하자는 것이다.

이튿날, 이들은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특별한 곳을 소개하겠다며 마을 산속의 깊은 곳으로 안내했다. 근 100년 된 폐 금광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이곳에 굴을 파고 주민들을 강제노역 시키면서까지 금을 캐가던 곳이다. 계곡을 넘어, 밀림같은 숲을 헤치고 들어가니 사람보다 높은 굴이 나타났다. 안으로 들어가니 끝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500m 정도였지만, 총 길이가 2㎞는 될 것이란다. 온 몸을 녹이는 서늘한 공기, 금맥을 따라 흐르는 차가운 물길, 반짝이는 금모래빛, 그리고 도룡뇽과 박쥐 등의 생명이 지난 세월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동굴 바로 옆에는 금을 캐서 옮기고 선별하는 등의 작업이 진행됐을 노역 현장이 남아있다. 좁고 긴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원형경기장 같은 모습의 폐공간이 나오고 여러 개의 문과 창고와 작업의 현장이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이곳으로 끌려왔을 것이고, 고된 노동을 강요받지 않았을까. 이처럼 아픔의 현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마을 입구의 폐교와 돌담과 오래된 나무들과 계곡물과 쏟아지는 햇살이 무심하다. 도마령 고자리 가는 길은 길고 느리며 유순하다. 이곳의 역사를 침묵으로 지켜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 이 마을의 비밀을 풀어줘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주민들의 염원에 귀를 기울여야겠다. 느리지만 감성이 꽃피고 행복을 노래하는 곳이라면 더욱 좋겠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라는 윤동주의 시가 입술을 비집고 나온다. 나는 마을 주민들에게 "오늘 밤은 당신의 밤입니다"라는 짧은 말을 건네고 하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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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