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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부장

아침햇살이 참 곱다. 맑고 향기로움이 내 안으로 밀려오는 듯하니 마음 한 조각 담아 편지를 쓰고 싶은 생각에 젖는다. 바람따라 흔들리되 결코 뽑히지 않는 어린 나무와 북풍한설을 딛고 꽃을 피우는 작은 생명들, 그리고 봄비에 씻겨 해맑게 얼굴을 드러내는 초록 잎사귀들이 봄날의 아침을 더욱 싱그럽게 해 주고 있다. 이처럼 이름 없이 반짝이는 것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은 계절, 모든 생명이 춤을 추고 노래하는 5월이다.

그러고 보니 두 달이 지났다. 우리고장 구석구석이 아름다움으로 물결치고 사랑과 감동의 무대가 되면 좋겠다는 다짐으로 글과 그림과 사진이 있는 책 <즐거운 소풍길>을 출간하고 전시회를 마친지도 두 달이 지났다. 책 한 권으로 전시회를 한다는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시큰둥했다. 남들처럼 가정에 충실하고 직장생활 열심히 하면 되지 번번이 괜한 고생을 하는 것이 아니냐며 투정 섞인 표정들이었다.

나는 최근 10년 동안 매년 책 한 권씩 펴냈다. 이 중에는 읽히지도 않고 팔리지도 않는 책도 있지만 문화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돼 기분 들뜨게 한 책도 있다. 빚을 얻어 책을 만들기도 했고 반응이 좋아 재판에 들어간 책도 있다. 인세로 돈 몇 푼 받으면 혼자 쓰지 않았다. 시골 초등학교에 도서관을 만들고 갤러리를 만드는데 보태기도 했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내 맘에 드는 책을 만들지 못했다. 책 읽기를 꺼려하는 우리사회에 지식보다 더 가치있는 지혜를 담아내고자 갈망했지만 매번 헛수고였다. 사람들의 냉랭한 반응 앞에서 좌절한 적이 한두 번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1년에 한 번씩 책을 펴 내지 않으면 안되는 마술에 걸린다. 내 삶에 대한 흔적과 열정을 담고, 새로운 문화DNA를 찾으며,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또한 미래에 대한 꿈을 디자인하고 싶은 열망에 잠시라도 머뭇거릴 수 없었다. 그러면서 스스로가 변화하고 발전하기를 바랬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정신을 한 권의 책으로 표현하려 했다. 거센 파도와 비바람에도 영원히 변하지 않을 나만의 전설을 갈구했던 것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아름다운 노래와 음악과 다도가 함께하는 출판기념회를 열고 글과 그림과 사진이 있는 전시회를 가진 것도 이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역사와 문화와 생태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미려하게 표현한 글, 수묵담채화로 표현된 강호생씨의 그림, 그리고 대자연의 속살을 렌즈로 담은 홍대기씨의 풍경 앞에서 당장이라도 소풍가고 싶다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다녀 온 곳 앞에서는 지난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누고 낯선 풍경 속에서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소풍 일정을 잡느라 부산했다. 청주에서만 전시회를 하지 말고 지방 순회전을 해달라는 주문도 있었으며 전시장 대관료를 대줄테니 연장전시 하자는 이름 모를 시민의 간청도 있었다. 충북을 넘어 대한민국 구석구석과 세상의 이야기를 소개해 달라는 애정 어린 제안도 있었다.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더불어 다 함께 사는 길이 무엇인지, 나는 누구이며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 나와 이웃과 우리 사회를 위해 무엇을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는지, 그리하여 나는 나의 길을 어떻게 자박자박 걸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젊은 날에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때는 사랑을 모른다고 노래했던 어느 시인처럼 지금 이 순간, 이 공간, 이 하늘아래 존재하는 생명의 소중함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쉬움과 후회도 적지 않다.

그러하다. 이토록 찬연한 봄날, 힘들고 무거운 짐 내려놓고 즐거운 소풍길을 떠나보자.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물어볼 새도 없이 달려온 지금 이 순간, 잠시라도 마음을 내려놓고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면 어떨까.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마르지 않는 맑은 샘을 만들고, 향기로움이 천리를 가는 아름다운 꽃을 심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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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