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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

오랜만에 고향집과 처갓집을 오가면서 한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차창 밖에는 코스모스 춤을 추고 황금빛으로 물든 들녘에서 구릿빛 농부들의 거짓 없는 삶이 끼쳐온다. 승용차를 버리고 가을길을 걸으니 바람과 햇살과 구름과 꽃들이 잔치마당이다. 나는 그 길에서 쏟아지는 아름다움에 취해 온 몸이 붉게 물들었다. 호사도 이런 호사가 어디 있던가. 그동안 허겁지겁 욕망을 좇아 앞만 바라보며 살아온 것을 생각하니 부끄러울 뿐이다.

대자연속에도 아픔이 왜 없겠는가. 그 끝을 알 수 없는 북풍한설과 고독 속에서 방황한 적이 한두 번 아니었다. 지난 여름날 쏟아지는 태양과 세상의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 간은 태풍 앞에서는 정말이지 젖 먹던 힘을 다해 살아보려고 발버둥치기도 했다. 외롭고 고달픈 시간의 마디마디에서 온 몸으로 세상과 부딪쳐 상처투성이가 되었지만 이 모든 것이 성장통이었다. 이제 한 떨기 꽃으로, 향기로, 열매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가을풍경을 혼자 즐길 수 없어 딸들에게 바깥세상에 눈을 돌려보라고 권했지만 감흥이 없는 것 같다. 모두들 핸드폰의 세계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아이들에게 유일한 해방구는 자연의 힘도 부모의 정성도 아니다. 소풍같은 낭만적인 얘기는 이제 씨도 먹히지 않는다. 오직 성능 좋은 핸드폰만 있으면 된다. 짬짬이 핸드폰을 벗 삼아 노래하고 춤을 추며 또 다른 세상과 소통할 뿐이다.

나는 다시 슬픔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소싯적 얘기를 하면 고루한 놈으로 치부할 것 같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대자연의 생리적 근원을 온 몸으로 품고 살면서 새로운 희망을 노래해야 할 때에 핸드폰의 노예가 돼 있으니 저들의 앞날이 걱정이다. 핸드폰을 뺏을 수 없고 호통칠 수 없으니 자식농사는 애비 맘대로 되지 않는 것 같다.

얼마 전 책과 담쌓고 사는 사람도 절로 책 꺼내들게 만드는 마법같은 일을 기획한 적이 있었다. 핸드폰이 없어도 신나게 놀고 노래하며 자연을 벗삼아 즐거운 악동이 될 수 있는 신이한 일을 만들었다. 2012청주직지축제 기간 중에 예술의전당 일원에서 열린 '직지캠핑' 이야기다. 도심 한 복판에서 캠핑을 하자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시큰둥했다. 시골이나 산속에서 하는 캠핑을 번잡한 도심의 행사장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다. 시답잖다는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캠핑가족 공모에 들어갔는데 반나절만에 모집인원 100명을 꽉 채우고도 대기자들이 줄을 섰다. 하긴 전국적으로 캠핑족이 200만 명에 달한다고 하니 캠핑족을 찾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날 저녁, 전국에서 온 캠핑 가족들은 하룻밤의 낯선 여행을 즐기려는 호기심과 기대반 우려반의 눈빛으로 텐트를 쳤다. 참가자들 중에는 호숫가나 산속으로 가지 괜한 곳에 왔다며 투덜거리기도 했다.

이들은 '가을의 노래 조이콘서트'가 열리는 야외 특설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긴장을 풀었다. 난생 처음 야밤에 박물관 속으로 들어가 직지에서 디지털까지 역사의 궤적을 둘러보았다. 주제전인 '책들의 만찬' 전시장에서는 한범덕 청주시장이 깜짝 출연해 재치만점의 강의와 와인파티도 이어졌다. 통기타 가수의 퓨전음악에 맞춰 손뼉을 치며 노래하고 장기자랑과 체험행사까지 곁들였다. 수많은 책속에 파묻혀 책을 읽다 보니 어느덧 밤하늘의 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핸드폰이 없어도, TV나 컴퓨터가 없어도, 굳이 산속이 아니어도 감동적인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참가자들에게 소감문을 쓰게 했는데 모두가 대만족이었다. 수없이 캠핑을 다녔지만 이토록 감명 깊었던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자연과 역사, 문화와 예술, 책과 놀이가 하나되는 멋진 신세계였으며 그 감흥은 영원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니 이참에 청주를 문화캠핑의 숲, 예술의 바다로 만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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