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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식

수필가

-청원군 북이면에서 두루마리를 입은 꼿꼿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수염이 허옇고 위풍이 당당한 근래 뵙기 어려운 노인이십니다.

"반갑네, 얘기 잠깐 할 수 있을까?"

-아, 예. 어르신, 뉘신대 뭔 말씀을 저한테 하시려고요?

"나라가 걱정돼서 말이여, 큰일이야."

-어르신, 저는 가족이 문제고 제 앞가림도 어려워요.

"그래도 백성은 나라 걱정을 해야 하는 거여. 나라가 있고 백성이 있지, 원."

-실례지만 어른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500살은 안됐고 400은 넘었어."

-혹시 존함을 여쭈어도 될까요?

"명길이야, 지천(遲川) 최명길(崔鳴吉)."

-(머리가 하얘지고 상황파악이 안 된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무식하기는, 나랑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어른이 정묘·병자호란 때 무척 싸웠잖아! 그래도 몰라?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네…."

-어르신, 그럼 조선의 인조반정과 두 번의 호란에서 중대한 역할을 하신 어른이시라는 건가요?

"그렇지, 내가 그 사람이야."

-그게 정묘호란(1627년)과 병자호란(1636년)이잖아요? 거의 400년 전이네요.

"그때 참 어려웠어, 동아시아의 거대한 과도기였지."

-임진란의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겠어요?

"큰 전쟁은 이런저런 피해가 적어도 수십 년은 간다고 봐야지."

-명나라의 도움도 적지 않았잖아요?

"큰 빚을 진 거야. 명나라가 굉장한 타격을 입은 것도 사실이고…."

-그런 상황에서 청나라의 침략을 받았으니 대처가 정말 어려웠겠네요?

"더 큰 문제는 대신들의 사고방식과 시각이었지. 대의명분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어. 큰 소리는 명분에서 나오거든…."

-거의 모든 이들이 청을 배척하고 명나라 편에 서야한다고 했는데, 어르신은 반대로 주장하셨잖아요, 두렵지 않으셨나요?

"두려움의 문제라기보다 생존의 문제로 보았던 거지. 이때 친명배청(親明排淸)을 주장했던 이들을 이해 못하는 게 아니라 나라와 백성이 살기 위해 우선 화청(和淸)을 하자는 거였어."

-명분에 맞지 않고 당시 유교적 가르침에도 어긋나지 않나요?

"그렇다고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피해는 온전히 내 나라와 내 백성들이 당하는데, 그건 안 되지."

-지금도 그 생각이 옳다고 믿으세요.

"백 번 옳지, 그 방법밖에 없었어."

-그러면 왜 청음(淸陰) 선생은 그토록 척화를 주장해 청나라와 싸우자고 하셨을까요?

"그분의 신념이셨지. 나보다 연세도 꽤 높으셔서 그런 일이 아니면 내가 맞서지 않았을 거야. 존경스런 분이야."

-어르신은 화친을 주장해 곤란을 당하지는 않으셨나요?

"어려움, 말도 못해, 내게 신의도 의리도 기본도 없는 놈이라고 몰아쳤어."

-어르신도 척화 편에 서고 싶지는 않았나요?

"다수 편에 서기는 쉬워. 비난과 처벌을 피할 수도 있고. 그렇지만 바른 판단과 설득을 할 수 있어야 참된 지도자야."

-인조께서 어르신 주장을 받아들여 항복을 하셨어요.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어."

-청은 왜 그토록 무례한 요구를 했을까요?

"힘을 가졌기 때문이지, 나라든 개인이든 힘이 있어야 해."

-힘이 약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처세라도 지혜롭게 해야지, 그게 생존을 위한 전략이야. 처세의 바탕은 철저히 국익이고…."

-너무 얍삽한 거 아닐까요?

"생존에 앞서는 건 아무 것도 없어, 난 그렇게 생각해. 소나기와 호랑이는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지. 내 호가 지천(遲川)이잖아. 느리게 흐르는 냇물이야. 때론 느리게, 여유 있게, 천천히 생각할 필요가 있어."

-우리 지역에 영원히 잠들어 계신 지천 최명길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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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DIVA 콘서트' 김소현·홍지민·소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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