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최한식

수필가

깊은 산으로 가는 길 자그마한 바위에서 쉬고 있던 중 산으로 드는 청년 한 사람이 눈에 들어옵니다. 불안한 듯 편안해 보이고, 무거운 듯 가벼운 발걸음이 뭔가 사연을 지닌 것 같아 말을 붙여 보았습니다.

-젊은이 조금 쉬며 물 한 잔 마시고 가지?

"(약간 망설이다가) 고맙습니다, 폐가 안 될까 모르겠습니다."

-명산대천을 유람 중인가, 산에 들어가야 할 사연이 있는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세상살이가 쉽기만이야 한가요?"

-한 칠십 된 노인의 말투 같네…. 세월 가면 모든 게 둥그레지고 순화된다네. 오늘 슬프고 유별난 일도 나중에는 덤덤한 일상이 되지.

"그럴 수 있을까요, 정말로 모든 일이 다 그럴까요?"

-그러고 보니 베옷을 입었네, 최근에 부모님을 여의었는가?

"이야기하자면 깁니다."

-아픔과 고통은 드러내 말만 해도 반은 해결이 된다네, 내 별 수는 없지만 젊은이 사연을 들어볼 수 없을까?

"(한참 말이 없다가)해결책은 기대하지 않고요, 다 끝난 일입니다. 세상일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데요. 그냥 자신의 신념대로 사는 게지요."

-노인네 소리 그만하게, 내가 자네보다 세상을 세 배는 더 살았을 걸세.

"저는 사리를 분별할 만한 십대에 외가 쪽으로 큰아버지뻘 되는 분이 타의로 자결하는 걸 보아야 했고 그분의 부인이 지아비의 원수에게 겁탈 당한다는 걸 가까운 곳에서 듣고만 있었습니다."

-안됐긴 하네만 '한 치 건너 두 치'라 하지 않던가, 자네보다 더 가까운 그 분들의 자녀들도 있었을 것 아닌가?

"그들은 이미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이 돌아가시고 그 분의 이종동생이 왕이 되었지요. 그 후로 팔 년여가 지나 힘이 약해져 천년 사직을 남의 나라에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젊은이, 일을 나무 확대해석해 자신을 학대하지 마, 높은 분들의 결정에 자네가 무슨 영향을 끼칠 수 있나? 그러니 젊은이 잘못이 아니야. 길게 보면 나라는 생기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 게야.

"그 분이 제 부친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않은가요?"

-(한참 말이 없다가) 다르지 않아! 자네가 부친을 대신할 수 없고 부친이 젊은이도 아니잖은가? 간언이나 충언은 항상 상식과 근본원리를 넘을 수 없고 결정은 당사자가 하는 거야. 부친은 왜 나라를 넘기자 하시던가?

"지키기엔 힘이 없고 싸우기엔 백성들 피해가 너무 크다고 하셨지요."

-이치에 맞고만…, 백성들이야 왕이 김 씨, 박 씨, 왕 씨 또 무슨 씨면 어떤가? 다 친인척도 될 수 있고 단군의 후손 아닌가? 군병으로 나가 싸우다 죽고 다치는 것보다 제 땅 일구며 평화롭게 사는 게 좋지. 안 그런가?

"제 처지는 그들과 다르지 않습니까? 끝까지 종묘사직을 지키자는 제가 잘못된 것인가요?"

-조금 감정을 가라앉히게, 심하게 말하면 자네는 자네고 부친은 부친이야. 자네의 주장이 잘못되지 않았듯이 부친도 그릇 판단했다 할 수 없는 거야. 서로 생각이 그러하고 결정권은 부친에게 있었던 게지. 서로, 아니 모두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거야. 젊은이도 자학과 죄책감을 이제 내려놓아!

"사람이 죽고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았으니 이보다 더 흉한 일이 있을까요? 전 삶의 의미와 의욕을 다 잃었습니다."

-그럼 뭣 하러 이 산골짝에 찾아드는가, 서라벌 근방에서 세상을 하직하지?

"너무 심하신 말씀 아닌가요, 그래도 숨이 붙어있는 한 살아야 하지 않나요?"

-이제 자넨 왕자가 아냐, 부담을 떨치고 평민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라는 게야.

"그러려고 합니다. 잡초처럼 비 오면 비 맞고 바람 불면 누우며 살 겁니다. 누구의 눈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남의 눈에 안 띄게 살 겁니다."

-도통한 노인처럼 말하네만 내가 한 수 가르쳐 줌세. 모든 걸 내려놓고 욕심을 버리게. 그러면 어디든 무릉도원일세. 많은 이들이 권세와 명예와 물욕에 묶여 있다네, 깊은 산에서도 벗어나기 어렵지. 다 비우고 살아 보게.

"감사합니다, 노인장. 제 마음이 훨씬 가벼워지고 많이 정리 됐습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황영호 12대 충북도의회 전반기 의장

[충북일보] 12대 충북도의회가 1일 개원 한 달을 맞았다. 개원 당시 '도민이 중심, 신뢰받는 의회' 실현을 약속한 12대 도의회는 '민생을 최우선으로 살피는 따뜻한 의정'을 최우선 추진 방향으로 제시하며 도민 행복과 민생 회복의 파수꾼을 자청했다. 35명(지역구 31·비례 4)의 도의회 의원을 대표해 황영호(청주13) 12대 전반기 의장을 만나 봤다. ◇충북도의회 의장에 선출되고 한 달이 지났다. 소회는. "먼저 의장이라는 중책을 맡겨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도의회뿐 아니라 대한민국 지방의회는 32년 만의 지방자치법 전면 개정안 시행과 함께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비, 우크라이나 전쟁 및 고유가로 인한 물가 불안정 등 어려운 경제 현실에 놓여있다. 무거운 책임감과 커다란 사명감을 느낀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고 도민에게 인정받는 도의회를 만들기 위해 낮고 겸허한 자세로 오직 도민과 충북의 미래만을 생각하겠다. 도민의 시선은 제대로 일하고 도민의 민생을 살피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겠다. 도의 행복한 삶과 충북 발전을 위해 집행부와 머리를 맞대고 여·야를 초월한 상생과 협력, 협치와 소통의 바탕 위에서 의회를 운영해 나가겠다." ◇상임위 배분 등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