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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식

수필가

-골목길에서 19세기 후반 조선의 방랑 시인 '난고 김삿갓' 선생을 만났습니다. 혹시 김삿갓 시인 아니신가요?

"아, 그런데, 거참 지금도 생각지 않은 곳에서 나를 알아보는 이가 있네."

-뜻밖의 장소에서 대단한 분을 뵙습니다. 큰 영광입니다.

"예상 못한 곳에서 뜻밖에 일들이 툭툭 돌출해 나오지, 그게 인생이야."

-철종 시절(1863년) 별세해 강원도 영월에 모셔진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곳서 뵐 수 있는지요?

"굳이 따지지 마, 세상엔 모를 일이 너무 많아. 영월에 뭐 내 뼈 하나 남아있으려나? 나 같은 이야 살아서나 죽어서나 자유로워…."

-선생은 천재셨잖아요, 방랑하듯 사신 게 후회되지 않으셨나요?

"누가 천재래? 또 내 삶이 어때서? 그럼 내가 도대체 어떤 삶을 살 수 있었다는 거야? 더럽고 험한 세상 구름처럼 바람처럼 그런대로 잘 산 거야."

-홍경래 난에 벌어졌던 할아버지 일을 정말 그렇게 몰랐던 건가요?

"몰랐지, 그 일이 있을 때 나는 어렸고 그 후로 곧바로 여기저기 이사 다녀도 그 이유는 잘 몰랐어. 사람들이 거의 없는 곳에 살았으니 세상과 등지고 살았던 게지."

-글은 모친께 배우신 건가요?

"그렇지, 이제 와 생각하면 어머닌 대단하신 분이셨어. 그런 가정사에 대한 내색 없이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치셨거든."

-선생 나이 스물에 영월 동헌에서 열린 백일장이 원망스럽진 않으셨어요?

"그때 시제가 '하늘을 뚫는 김익순의 죄를 규탄하라'는 것이었어, 서슴없이 딱따구리 나무 쪼듯 써냈더니 장원이라 하더라고, 집에 돌아와 모친께 아뢰니 언짢아하시며 말씀해 주시데. 누구를 탓하고 원망해, 그게 내 운명인걸…. 하늘이 노랗고 세상이 싫어졌어, 며칠 고민하다 외가에 다녀온다고 하고는 금강산으로 내뺐지. 그게 시작이었지."

-조부님 원망 많이 하셨겠네요?

"안했다면 거짓말이지, 그래도 이해하려고 애를 썼어. 조부 덕에 일찍 내 정체성을 찾았던 게지. 관리라는 좁은 세상을 떠나 더 넓은 천하를 얻었지. 조선시대 선비 중에 나만큼 유명한 사람이 누가 있어?"

-가정적이라고 말하기는 좀 민망한 삶을 사셨지요?

"조부를 규탄하고 세상에서 버림받은 내가 안락한 가정생활을 한다면 '큰 죄'라고 생각했어. 세상은 나를 내치고 난 세상을 애써 무시 했달까 그렇게 산게지. 그것에 내 재주를 맘껏 쓴 거야. 한편은 외롭고 불쌍했던 거지. 그래도 한 세상 거침없이 살았어."

-그런 중에도 자녀를 셋이나 두셨어요.

"뜨거운 젊음이 내게도 있었고 마음이 가는 여인과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았다는 증거야. 한 곳에 뿌리내린 듯싶었는데 그건 또 아니더라고…. 내 잘못에 운명이 더해졌겠지."

-가정으로 돌아와 평범하게 살자는 아들의 권유도 여러 번 있었다지요?

"그때마다 내가 같잖은 이유를 대고 따돌렸었지. 서로 안 된 일이었어."

-밖으로 도셨으니 세상 돌아가는 모습은 잘 아셨을 것 같아요.

"늘 그렇듯 힘든 세상이었어, 특히 서민들 고생이 말도 못했어. 관리와 양반들은 내 보기에도 눈꼴이 시었지. 왕은 무능하고 세도가의 횡포가 엄청났지."

-기득권층을 골탕 먹인 선생의 풍자시와 소문들이 듣는 이들 마음을 시원케 하고 어느 정도는 풀어준 것 아닌가요?

"내 만족 아니었을까 몰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도 제한적이었어."

-다시 한 번 세상을 산다면 무슨 일을 하고 싶으세요?

"공무원 생활을 한번 제대로 해보고 싶어."

-의외네요, 이 시대 사람들에게 한 마디만 해주시지요?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이 열려요."

-뜻밖에 유랑시인을 만나 많은 말씀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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