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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4.05 16:37:35
  • 최종수정2023.04.05 17:10:10

최한식

수필가

-삶을 달관한 듯, 어찌 보면 몹시도 지쳐 보이는, 인생의 신산고초를 다 맛 보았을 여인을 모셨습니다. 자신을 소개해 주시죠.

"나혜석입니다. 날보고 신여성이라 합니다. 내 수식어가 무척 많은데 다 부질없어요. 험한 시대에 금수저로 나서 아무 수저도 없이 삶을 마쳤습니다. 한많은 여인이지요."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하고 선생의 생애를 살펴봤어요. 선생에게 큰 영향을 남긴 남자들 중심으로 얘기를 했으면 합니다.

"알아서 하세요. 어떤 방식으로 하나 비슷할 테니까요."

-그럼, 아버지 얘기부터 시작해 볼까요?

"아버지는 모순되고 복잡한 분이셨어요. 수원에 많은 땅이 있었고 사법관에 일제시대에는 용인, 시흥군수를 지낸 부와 세력을 다 가진 분이었어요. 내게 온갖 재능을 물려주고 서양식 학교에 보낸 개명된 생각에 한편은 가부장적이고 첩을 데리고 살았던 분입니다."

-부친에 대한 선생의 평가는 어떠신지요?

"넘치는 재능과 그 당시 일본 유학을 보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분이지요."

-선생은 일본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합니다. 유학생활 중 많은 활동을 하면서 시인 최승구를 만납니다. 그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시죠.

"꿈같은 시절이었지요. 어느 날, 홀연히 새 세상을 보았고 뭐든 다 할 것 같았어요. 내가 제일 잘 난줄 알았고 비록 오빠가 있었어도 고삐 풀린 망아지, 새장을 벗어난 새였지요. 모든 게 새로웠어요. 조선 유학생들이 꽤 있었는데 내 인기가 대단했어요."

-최승구 선생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세요.

"부모에 의해 조혼이 행해지던 조선의 젊은 여인에게 남녀가 자유롭게 만나 사귀다 결혼하고 그 후에도 합의해 이혼하는 게 흠이 아니라는 건 가히 혁명적이었어요. 그 즈음 최승구라는 이를 만났지요. 오빠는 우리 만남을 반대했지만 결혼까지 생각했었어요. 집안 어른들의 반대, 좌절된 사랑, 폐병으로 그 분이 죽어요. 23살 아가씨에게는 너무 힘든 시련이었어요."

-'첫사랑'을 잃고 실의에 빠져있던 선생에게 김우영이 나타납니다. 선생의 딱한 모습을 보다 못해 오빠가 소개해준 교토대학 법학과 학생이었다지요.

"그랬지요. 하지만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내게는 관심권 밖이었어요. 그분은 내가 첫 눈에 들었는지 무척 적극적이었고요. 1918년 학교졸업하고 귀국해 교사생활을 하면서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했지요. 체포되고 옥살이하는 동안에 그 분이 조선으로 건너와 내 사건을 변호하고 많은 독립지사들 재판에 도움을 주면서 끈질기게 구혼했어요. 그렇게 좋아한다는데, "열 번 찍어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결혼했지요."

-결혼생활은 행복했나요?

"내 삶에서 가장 밝은 순간이었어요. 자녀 낳고 전시회 잘 되고 남편 직장 탄탄하고, 밖에서 보기엔 빛나던 시절이었지요."

-1927년 남편과 세계 일주를 떠나요. 세계와 미술을 향한 새 지식과 열망에 싸여 일본외무성에서 선생의 남편에게 부여한 포상 성격의 부부동반 세계여행은 가슴 벅찬 기회였지요. 그 과정에 운명처럼 최린이 등장합니다. 그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시죠.

"뭐 그리 대단하고 자랑스럽다고 또 늘어놓아야 하나요? 호사다마랄지, 내가 단단하지 못했던 건지, 최린이 더 강했었는지, 아니면 서로 격렬히 불타오른건지 오랜 세월이 지나 뭐라 딱 잘라 말할 수 없네요."

-그 일로 결혼생활이 파탄 나고 많은 일들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참담하달 수도 있는 말년으로 이어져 끝내 파킨슨병, 관절염, 중풍으로 고생하며방황하다 1948년 말에 서울시립자제원에서 행려병자로 사망합니다. 더없는 재원에 금수저로 출발해, 왜 그렇게 서글프게 끝나야 하는 걸까요? 천재들의 죽음이 너무 허무해요. 한 말씀 해주시죠.

"그게 인생이지요. 한때나마 신나게, 여한 없이, 시대의 앞에서 살았어요.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는 거지요."

-시대를 앞서갔던 자유로운 여인, 나혜석과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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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